경북대 버스킹의 초석을 다진 어쿠스틱 밴드,
오늘도 무사히 엄태현 정유진



'오늘도 무사히' 는 보컬 엄태현과 반주 정유진으로 이루어진 2인조그룹.

그들 스스로 ‘조용하고 우울하고 이별한 것 같이 슬픈’ 음악을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유쾌했고 즐거운 젊은이들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_ 오무히
안녕하세요. 그룹 소개 좀 해주세요.

오무히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엄태현입니다. 경북대 역사교육과 졸업생입니다.
키보드 치는 정유진입니다. 경북대 고고인류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어떻게 ‘오늘도 무사히’(오무히)라는 팀이 생겨난 건가요?
오무히 전에 2년 반 동안 ‘두 남자가 모자를 쓰는 이유’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었어요. 그러다가 같이 하던 친구가 밴드에서 빠지면서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됐고 키보드를 쳐 줄 멤버가 필요해서 이 친구를 끌어 들인거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선배의 여자친구 분 덕분에 이 일을 제의 받았어요. 처음에는 밴드를 한다니까 막연히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했어요.



그럼 팀 이름은 왜 ‘오늘도 무사히’로 정해진 건가요?
데뷔하는 날에 점심을 먹고 가게에서 나오다가 제가 사고를 쳤어요. 그걸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제발 오늘도 무사히...’라고 말한 데서 따왔어요.

그래서 오늘도 제발 무사히 공연을 잘 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거에요. 제발 실수 좀 하지 말자고 이름에 간절한 염원을 담았어요.



보컬과 건반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첫 번째 이유는 다른 팀원을 구하기 힘들었단 거. 두 번째로는 건반을 중심으로 하는 버스킹 밴드가 잘 없으니까 우리를 차별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건반이랑 보컬 뿐이니까 노래가 좀 심심한 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매달 객원 멤버 한 명과 함께 공연하려고 해요.





오무히가 버스킹을 하는 이유.
버스킹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해보면 정말 재밌어요. 일단 제약이 없잖아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관객들이 호응 해주시면 그만큼 흥이 나기도 하고요.
무대 공연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까 저희는 그걸 충족시켜줘야 하잖아요. 근데 버스킹은 우리가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관객들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면 되니까 무대 공연보다 부담이 덜해서 좋아요.



오무히를 비롯해 버스킹 문화가 인기를 얻는데, 인기의 요인은 뭘까요?
사실 저희는 키보드 때문에 공연하는 데 제약이 많아서 버스킹을 잘 못 해요. 그런데 공연할 때마다 반응이 좋으니까 인기를 조금은 체감해요. 버스킹이 관객들이 밴드 바로 앞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말그대로 정말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저희 인기는...앞으로 얻고 싶어요.



활동 영역 안에 버스킹 정류장(Busking Stop)이라는 게 있던데, 소개 좀 해주세요.
8팀 정도 되는 인디밴드들이 모여서 우리를 좀 더 알려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요. 기본적으로동성로 매스커피 앞에서 플래시 몹을 하고 공연도 해요. 버스 정류장을 보면 버스가 언제 올 거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것처럼 정해진 장소에 언제, 어떤 버스킹 밴드가 올 지 사람들이 기대하게 만드는 거에요. 대구 안에 일종의 버스킹 존(zone)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버스킹 공연이 거리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예기치 못한 상황도 발생할 것 같아요.
일단 키보드가 무거워서 힘들어요. 설치하는 것도 힘들고요. 겨울에는 바람 불어서 악보가 넘어가고 키보드까지 흔들리고...여름에는 더워서 힘들고...참 계절을 많이 타죠.
저희는 주로 조용한 노래를 해서 버스킹 중에 큰 사건이 발생한 적은 없어요. 근데 다른 밴드들은 주변 상가에서 시끄럽다고 쫓아내고 그랬다더라고요. 취객이 와서 팁 박스*를 노린 적도 있다고 하고요.
(*팁 박스:버스킹 밴드가 공연할 때 관객들이 팁을 넣어주는 박스)



지금까지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꿈을 주는 선물’이라는 공연이었는데, 큰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었어요. 무대도 웅장하고 키보드가 아니라 피아노로 공연을 해서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공연 취지도 좋으니까 더욱이 공연하기에 좋았고요.
‘하쿠나 마타타’라는 공연이었는데, 그때 당시에 우리끼리 호흡이 진짜 안 맞았어요. 정말 노래가 시작되고 처음부터 보컬과 반주가 막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그게 노래 끝까지 가더라고요. 그 때 관객들이 중·고등학생들이었는데 노래가 이상한 거 알면서도 박수를 많이 쳐줬어요. 진짜 고마웠어요.



무대 공연과 버스킹은 어떤 차이가 있어요?
버스킹은 자유로우니까 유동적인데, 무대 공연은 연출자의 의도라는 게 있어서 자유로움이 덜 한 것 같아요. 그 의도를 충족시켜야 하니까. 그리고 버스킹 보다는 무대 공연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무대 공연이 좀 더 안정적으로 잘 되는 편이에요.





뮤지션이란 무대에서 인디밴드의 자리.
인디밴드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으세요?
8월 9일에 대백프라자 앞에서 공연 할 때 있었던 일*이 열악한 대우를 단적으로 보여주죠. 방송국 생각은 메이저 가수들을 부르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그렇다고 밤 무대 가수를 부르기에는 공연 취지랑 어긋날 것 같고. 값도 싸면서 적당하게 부려먹기 좋도록 저희 같은 인디밴드들을 부른 거죠. 그 방송국 사람이 참 예의가 없었고 배려도 부족했는데, 그게 우리의 문화 위상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당시 공연을 기획한 TCN 방송국의 한 촬영 감독이 공연 중인 오무히에게 반말을 하면서 무례한 태도를 보인 일로, 페이스북의 오늘도 무사히 페이지에 자세한 일화가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시아 폴리스 CGV에서 정기 공연을 하는데 시간 당 페이를 받아요. 그런데 그 돈이 알바 치고는 괜찮은 보수일 지 몰라도 저희는 특수 노동을 한다고 생각해서 좀 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요구를 말할 수가 없는 입장인 게 문제죠. 유명한 아이돌 가수도 아니고 내놓을 만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CGV 측에서는 언제든 우리가 아니라 다른 가수를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빚지고 공연하는 느낌이에요. 공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겨우하는 느낌.



그럼 반대로 좋은 점은 없어요?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할 수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에요.
어쨌거나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거 하나만 보고 이걸 하는 거죠.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때요?
무대 공연을 할 때는 페이를 받아요. 그런데 버스킹할 때는 팁 박스를 잘 안 꺼내놓는 편이에요. 가끔 자선공연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주최사에서 페이를 주겠다고 해도 저희가 취지에 어긋나게 행동할 수 없으니까 그 돈을 안 받기도 해요.
CGV에서 공연 하면서 돈을 버니까 지금 당장은 그런 공연에서 굳이 돈을 받아낼 이유가 없는 거죠. 사실 CGV 공연에서 버는 돈도 큰 금액은 아니지만요.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죠. 다른 알바와 병행해야만 생활이 될 거에요.



밴드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면요?
공연을 많이 하면서 더러운 일도 많이 겪었어도 가끔씩 관객들이 진심으로 호응해주시고,좋아해주시고, 선물까지 주실 때는 진짜 기분 좋아요.‘아, 그래도 내가 이 사람들한테 행복감을 줄 수 있구나.'싶어요.
공연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타고 저희 안에서 호흡이 착착 맞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오늘은 다르게 들리더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가 좋았어요. 그리고 선배가 워낙에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다른 밴드 같으면 보컬이 중심에 있고 반주자한테 보컬에 맞춰 달라고 요구를 많이 해요. 그런데 선배는 저한테 항상 맞춰 주고 대우해주는 것 같아요.
보컬 혼자서는 공연이 불가능해요. 반주자가 없으면 보컬이 있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세션 밴드한테 정말 고마워요.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반대로 이 활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나요?
저는 고비가 일찍 왔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공연을 하니까 과제에, 수업에, 공연까지 겹쳐서 부담이 확 오더라고요.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휴학을 하면서 고민이 해결 됐죠.
사실 제일 견디기 힘든 게 회의감이에요. 지금 나이가 26살인데 이제야 음악을 시작했잖아요.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 나이가 다 10대던데 정말 잘 하잖아요. 그런 걸 볼 때면‘ 나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생 각이 들죠. 그리고 내가 음악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왜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건지 스스로 답답함을 느껴요‘. 어쩌면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따분한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도피처로 이용하는게 아닐까?’하 는 생각도들어요. 따지고 보면 게으름이 문제네요.



최근에 홍대에서 버스킹 밴드를 잡상인으로 여기고 물러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하께서는 왜 그러실까요?
홍대를 생각하면 자유, 젊음을 생각하는데, 그런 곳을 막아버리면 우리의 욕구를 아예 차단해버리는 행위인 것 같아요. 문화로 소통하고 싶어서 버스킹 문화가 생겨난 건데 그걸 가로막으면 안 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노래하는 거지로 보는 거죠. 그렇게 인식하는 걸 보면 현 정부의 인식이 그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거죠.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이나 문화는 비싸고 우아한 거니까요.




오직 대구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그럼 앞으로 버스킹 밴드(문화)가 나아갈 길은 어떤 걸까요?
첫 번째로 버스킹 밴드들 간의 협동심을 높일 수 있는 연합 단체가 필요한 것 같아요. 뮤지션으로 대우해 달라고 말하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두 번째로 버스킹 존이 여러 군데 생겨야 할 것 같아요. 공연할 장소가 없으면 공연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세 번째로는 공연장과 밴드 간의 연합 관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예술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내가 사는 지역를 좀 더 살려보자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먼저 터를 깔고 자꾸 물을 주고 볕을 쬐고 키워나가면 잘 될 것 같아요.
여기에서 충분히 실력을 키운 뒤에 올라가도 되죠.





오무히의 목표와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자작곡을 만들고 싶어요. 올해 안에 한 곡이라도 만들어서 디지털 싱글이라도 내고 싶어요. 반주 실력도 갖추고 싶어요. 그리고 월 수입으로 딱 백만 원만 찍고 싶어요.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헤서. 나중에는 임정득 씨 같은 민중가수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북문이 좀 깨끗해졌으면 좋겠어요. 항상 의문이 드는데요, 우리가 항상 쓰는 장소인데 왜 그렇게 오염시키는 건지 모르겠어요. 바람 불 때 쓰레기 냄새가 좀 안 났으면...



마지막으로 한마디!

10월 4일 저녁 6시부터 시작하는 공연이 하나 있어요. 경북대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가을 공연인데 저희 뿐만 아니라 다른 버스킹 밴드들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10월 8일 저녁에 동성로 중앙무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가요제도 열릴 거예요. 아니면 이시아폴리스 CGV에 찾아오셔도 되고요.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공연도 많이 보러 와주세요.



글ㅣ가인    편집|은민   캘리ㅣ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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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바겐자 EXTRAVAGANZA CEO,

김사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바로 그 ‘찰나’
시끌시끌한 분위기, 쿵쿵 울리우는 음악, 몸을 흔드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한 청년이 있다.




안녕하세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 3학년 김사윤입니다.
'엑스트라바겐자(EXTRAVAGANZA)’를 운영 중이고, 주로 클럽, 행사, 공연 사진 찍고 있어요.



사진에 매료되다


전공과 다르게 사진을 택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예술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솔직히 그림을 잘 못 그리는 편이었요. 재수하고 계명대 패션디자인과로 입학했고 군대 가기 전에 서양화과로 전과를 했어요. 그런데 전과를 하고 보니 과랑 안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그리는 건 손에 잘 익지 않고. 완성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림이랑 다르게, 사진은 촬영하고 바로바로 감상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리기 시작했어요.


군대 갔을 적에는 사진병으로 복무했었고, 전역하고 나서부터 바로 학교 졸업앨범, 여행사진 같은 걸 찍으면서 용돈벌이를 했었죠. 2009년에는 ‘무신사’라는 사이트에서 대구의 거리패션 촬영을 담당했었어요.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사진을 촬영하려고 장비를 늘려가다 보니까 그때부터 카메라 장비 쪽으로 욕심이 생기고, 사진 자체도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시작한 거 같아요.




군대에서의 사진병 경험이 이 일을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거네요?
그렇죠. 거기에서 조명 다루는 법을 다 배웠으니까요. 군부대다 보니까 높은 분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잘못 찍으면 영창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항상 긴장하고 사진촬영을 했었던 거 같아요.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갔는데도 의외로 일도 잘 풀렸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까요.




미대생이니까 아무래도 사진에 대해 도움을 좀 받았을 것 같은데요.
그건 맞아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실제로 미대 출신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랑,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구도 같은 면에서 좀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들의 문화를 포착하러 클럽에 간다




지금 ‘엑스트라바겐자' 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이름을 이렇게 짓게 된 건.. 어느 날 노래를 듣다 좋아서 제목을 찾아보니, ‘엑스트라바겐자(EXTRAVAGANZA)’더군요.‘화려한 오락물’이라는 뜻이었는데 그 뜻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아는 형이랑 스튜디오 엑스트라바겐자로 시작했었는데, 스튜디오라는 이름 때문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엔 스튜디오는 빼고 ‘엑스트라바겐자’로만 해서 다시 시작했죠. 클럽이나 공연 사진을 주로 찍으러 다녀요.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을 거 같아요.
초반에는 거의 돈을 못 벌었어요. 그냥 사진을 찍는 게 좋아서 돈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작업량도 점점 늘어나고... 그러다가 ‘차비는 건지자’란 생각이 들어서 유료화선언을 했죠. 그런데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시작은 아는 형이랑 둘이서 했지만, 이제는 멤버가 많아져서 6명 정도 돼요. 우리 사진을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고요.



왜 하필이면 클럽이나 공연인거죠?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서 즐기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클럽문화가 흔히 퇴폐적이라고 하고, 솔직히 제 눈에도 과하다 싶을 때가 있긴 있죠. 하지만 건전하게 노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거든요. 음악이 좋아서, 듣고 싶어서, 그냥 그걸 즐기려고 가는 사람들도 역시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요. 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식이잖아요, 문화이고. 그냥 그런 게 좋아서 이 일을 하죠. 또 대구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목적도 있었고요.




대구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
큰 목적은 그렇죠. 이제 조금씩 대구 문화에 관한 영역을 좀 더 넓힐 생각이에요. 버스킹밴드, 큰 공연, 미술 전시 같은 거 까지... 작은 거부터 큰 거까지요.



추구하는 사진의 컨셉이 뭔가요?
아무래도 클럽이라는 공간에서는 솔직히 선정적이고 끈적한 모습을 많이 봐요. 그래도 순수하게 즐기러 온 사람들, 스트레스 풀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옷을 잘 입거나, 예쁘거나, 귀엽거나. 이런 게 아니라도 그 현장의 분위기를 잘 나타낼 수 있고 정말 잘 노는 사람. DJ나 장비를 찍기도 해요. 현장감을 주는 게 목적이니까요. 음악에 취해서 몸을 막 움직이는 모습이나 열정적으로 즐기는 모습 같은 게 좋아서 그런 컨셉으로 많이 찍어요.




내가 즐겨야 사진도 즐겁더라



사진을 통해서 얻고자 싶은 것은 뭔가요?
제가 찍은 걸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힘을 얻어요. 솔직히 부자가 되려고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먹고 살 정도만 되면 만족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이 완전히 일이 돼버리면 머리가 복잡해지니까요.



아직은 일로 생각하진 않는다는 건가요?
일인지 아닌지는 내가 즐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직은 일보단 즐기는 쪽에 더 가깝겠네요. 어쩔 땐 진짜 관두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까.



어떨 때 그만두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 건전하게 즐기는 모습을 소개해주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냥 퇴폐적으로만 보니까 그게 안타까워요. 그럴 때면 진짜 관두고 싶어져요. 사실 어른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런 문화도 인정해주고 같이 이끌고 가면 될 텐데,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잖아요. 무조건 어른들의 문화로 보는 것도 그렇고요. 클럽 문화가 건전한 문화로 정착되면 청소년 탈선 문제 같은 것도 덜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찍고 싶은 사진은요?
애초에 목표는 패션잡지 포토그래퍼였어요. 외국의 잡지를 보면 사진 한 장을 위에서 준비를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그게 인상적이었고 멋있어 보였어요. 일단은 지금 하는 일이 잘 된다면 계속 가지고 가겠죠. 졸업 전까지 해보고 결정하려고요.




본받고 싶은 사진작가가 있다면?
같은 계통에 계신 분들 중에 HOSPITAL PHOTOGRAPH라는 작가님이 있어요. 오랫동안 일을 했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에요. 1세대 작가인데 아직까지도 그런 열정을 가진 게 본받고 싶죠.




나에게 사진은 이런 것이다? 사진을 정의하자면?
저에게 사진은 “오아시스”다! 솔직히 그림을 하면서는 그다지 열정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사진은 새벽 3~4시까지 작업을 하고 나서도 6시에 일어나서 다시 작업할 수 있는 그런 열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사진은 기록이잖아요. 일상적이고 평범한 기록보다는 즐거운 한 때를 기록한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 생각해요.




카메라를 메고 나아갈 길




지금 새롭게 추진 중인 사업이 있다고 들었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사진을 보긴 하지만 거기서 더 큰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한 번씩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해도 몰라서 못 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도 보여주면서 공연 정보도 전달해주는 사업을 구상 중에 있어요. 수익도 수익이지만 재미도 있을 거 같아요. 지금 학교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아서 준비 중이에요.



앞으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지금 하는 일을 키워서 엄청 큰 규모의 공연을 찍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서양화과 친구들과 함께 예술 분야에 기여는 일도 하고 싶고요.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더라도 유학을 가고 싶어요. 다 내려놓고 외국에서 사진 공부하고 싶거든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
사실 지금 같이 일하는 동생들을 잘 못 챙겨주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쓸 데 없는 짓일지도 모르고,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지도 모르는데 묵묵히 잘 따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글|가인 · 사진|예슬 · 편집|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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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대학생 인터뷰

  - 감성을 짓다. 건축학도, 심명보

 

 

취재 지희 혜은
사진 혜은
편집 새봄

 

 

심명보는 진지한 청년이었다. 자신의 삶과 주변의 것들을 결코 쉬이 여기지 않는. 그러면서 꾸밈없이, 그리고 끝없이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고 싶어하는 감성청년이었다. 간만에 '청년'다운 청년을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계명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08학번 4학년 심명보라고 합니다.

 

 

#1
영화는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반영한 것

 

 

이번에 만드신 독립영화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 제목은 <Away from home>이에요. 내용은 젊은 사람이 꿈꾸면서 방황하는 걸 담으려고 했어요. 학교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졸게 되는데, 갑자기 낯선 곳에서 깨 방황하게 되죠. 결국 그 건 버스에서의 꿈이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요. <Away from home>이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집을 떠나온 것을 말하는 거고요.

 

 

왜 영화를 만들었나요?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꿈도 많았고, 그 중에 건축디자인도 있어서 건축디자인학과를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활동하다보니 고민이 생겼어요. 때 마침 영화를 찍었던 시점이 3학년이었어요.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건축일은 맞는 건지, 나한테 맞는 다른 일은 없는 건지 한참 생각이 많아질 때였죠.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나한테 맞는 걸 찾기 위해. 그동안은 대학교에서 대학 교수에게 평가를 받고, 집에서 아버지에게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런 주위의 평가나 시선으로 부터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나 여행, 기자 활동 같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영화를 만든 것도 그 시도들 중 하나에요.

 

 

 

 

처음에 일어나니까 낯선 기찻길 옆이잖아요. 왜 기찻길인 건가요?

제가 배낭여행을 많이 했어요. 일본 도쿄,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그러다보니 여행을 하는 과정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곳은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장소잖아요. 거기선 살 수가 없으니까. 졸업이 그래요.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아버지와 대학의 압박에 등 떠밀려서 사회로 밀려나가는 거죠. 기찻길은 떠남, 여행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기찻길이라는 생경한 장소에서 눈을 뜨는 것은 낯선 사회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영화 속 주인공이 떠나는 건 어디로 특정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네. 떠나고 나서도 서울 홍대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해요. 그러다가 떠날 것을 결정하고 공항으로 가요. 그런데 공항 전광판을 보면 항로가 많잖아요. 거기서 또 방향을 잡지 못하죠. 주인공은 영화 내내 떠나기는 떠나는데 어딜 가도 목적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인생에서의 진로도 마찬가지로 기자를 할지 미술을 할지 건축 디자인을 할지 공부를 더 할지 영화를 찍을 지 등 방향이 여러 가지니까,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을 표현한 거죠.

 

 

본인이 단독 주연인데, 촬영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찍을지는 사전에 혼자 짰어요. 문제는 제가 주연이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찍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방학마다 한국에 와서 지내는데, 마침 영상을 찍을 때가 방학이라서 영상을 찍는 것을 부탁했어요. 영화 제작하는데 200만원이 나왔는데 그 중 120만원이 그 친구 비행기 값이에요. 그래도 그게 원래 영화 제작할 때 드는 인건비보다 싼 편이에요. 그렇게 충북 제천, 대구, 서울 이렇게 세 지역 에서 촬영을 했어요. 힘들지만 재미는 있었어요. 돈이 좀 아쉽긴 하죠. 그 돈으로 여행갈 수 있었는데.(웃음)

 

 

영화 자체에는 텍스트나 대사, 나레이션이 하나도없어요. 영상 하나만으로는 단박에 이해하기 힘든데, 의도한 거예요?

아뇨. 원래 이 영화는 전시에 쓸 영상이었어요. 그래서 구성도 영화와는 다르게 엉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독립영화로 재구성 하면서 나레이션을 넣었어요.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빼 버린 거예요. 목소리가 찌질하게 느껴져서.(일동 웃음) 결국 처음처럼 나레이션 없는 형식으로 밀고 나가게 되었죠.

 

 

원래 독립영화가 아니었군요.

네. 처음에는 영화가 아닌 에세이와 사진 위주의 포토에세이를 만들려고 했어요. 영상은 포토에세이전의 기획영상으로, 그러니까 그냥 전시용으로 찍은 거예요. 그런데 전시를 하기에 돈도 모자랐고 영상이 독립영화처럼 나왔다는 말이 많아서, 독립영화로 바꾸어서 결과물을 내놓은 거지요.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영감은 어디서 나왔나요?

평소에 블로그에 일기나 글을 많이 써요. 그게 2년치가 쌓였어요. 제가 쓴 인생 일기를 가지고 저의 인생프로젝트를 쓰고 싶어서 마음에 드는 6개의 스토리를 골라서 하나의 스토리로 합쳤어요. 그 6개의 스토리마다 각각 글과 사진이 있어요. 말했지만 본래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각각 전시 할 예정이었어요. 찍어놓은 사진을 인화하고, 타이포그래피와 사진 전시를 통해 에세이를 만들 의도였었죠. 그리고 영화 제작에 사용했었던 침대를 전시장 안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어요. 근데 여러 가지 이유로 원래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죠.

 

 

#2
이성과 감성의 만남

 

 

 

 

건축학과 내의 작업도 많을텐데 각종 예술 활동과 아르바이트까지 하려면 힘드시지 않나요?

힘들긴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들 건축학부가 할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리서치도 하고, 각종 공부도 많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사실 건축디자인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에요. 학교 내부 활동 보다는 학교 바깥의 활동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공학계열인 건축학부에 들어와서 예술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진 거예요?

어릴 적부터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순수 미술을 공부했고요. 지금도 미술이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여행 갖다 올 때마다 영수증을 모아서 콜라주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원래 건축디자인학과가 미대 소속이었어요. 그런데 군대 있는 동안에 건축학부가 새로 생기면서 공대 소속으로 옮겨간 거죠.

 

 

건축디자인학과가 원래는 미대였다니 놀랍네요. 건축하면 그냥 공학으로 생각되는데, 건축은 예술과 공학 중 어느 방향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건축가들도 항상 논쟁하는 부분이에요, 건축이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굳이 가까운 쪽을 따지면 공학에 가깝지만, 저는 공학과 예술이 51대 49의 비율로 섞여있다고 봐요. 그만큼 둘의 비율이 비등비등하다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그걸 떠나서 건축이 공학도 예술도 아닌 디자인의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이나 공학보다는 디자인 관점에서 봐야할 것 같아요.

 

 

건축과 영화의 공통점이 있나요?

네, 공통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자기가 아는 부분을 총동원해야 하거든요. 건축 디자인이라는 것이 수학적인 부분도 있지만 미적인 부분, 사람들이 생활할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거든요. 그런 것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디자인해야 해요. 제가 영화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지만, 영화도 배경이나 음악 같은 부분들을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구상해야 하니까, 비슷하다고 봐요.

 

 

영화보는 것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영화는?

일본 영화를 주로 많이 봐요. 일본 영화들이 여운을 많이 남겨요. ‘아이언 맨’ 같이 타임 킬링 용으로 보는 헐리우드 영화도 좋지만, 그냥 액션 하다가 마지막에 멋진 대사 한 마디 날리고 끝나잖아요. 보고 나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 남는 게 있는 영화를 좋아해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찍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고, 서양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해요. 위트가 있으면서도 생각해 볼 여지랑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잖아요. 그리고 영상이 예쁜 걸 좋아해요. 최근에 본 예쁜 영화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요. 그리고........독립영화는 안 좋아해요.

 

 

어? 독립영화를 만드신 분이?

처음부터 독립영화를 만들려고 영상을 찍은 게 아니니까요. 독립영화 자체를 안 좋아한다기보다 이해가 잘 안 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독립영화가 한 번에 이해가 잘 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제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다른 독립영화를 많이 찾아서 봤는데, 독립영화가 크게 재미가 느껴지지는 않아서요. 감흥이나 느끼는 게 많이 없었어요. 제가 제 영화를 봐도 이해가 안 되고 재미없는데.(웃음)

 

 

본인만의 감성을 이야기해주세요.

진심이 담긴 감성? 블로그에 에세이 같은 걸 많이 써서 올리는데, 나중에 보면서 좀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진심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훗날 내 글을 봤을 때 내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진심을 담아 썼구나 생각할 수 있게끔. 에세이뿐만 아니라 영화나 콜라주 작업. 기자활동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관심 있는 부분을 찾아서 담고 싶은 것을 만들어요. 타인이 보았을 때에는 그게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제 진심을 담고 최대한 꾸밈없이 담아내려고 해요. 사람이 꾸미려고 하는 게 보이면 매력이 없잖아요.

 

 

#3
나를 비워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 본인의 삶을 어떻게 건축해 나가고 싶으신지.

원래 졸업하기 전에 제 꿈을 확실하게 정하는 게 제 꿈이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봤거든요. 전시회도 다녀보고, 아르바이트, 기자 활동, 영상 제작 등. 그러면서 정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니 선택이 쉽지 않아요. 지금은 어느 특정한 분야에 가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일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저랑 맞는다면 설령 제가 지금 하는 일과 정반대라고 해도 그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또 성장 할 수 있거든요. 나를 버리면서 새로운 경험을 겪는 과정인거죠. 제 라이프스타일과 맞는 곳에 들어가서 성장을 하고, 성장을 해서 사회에 배운 것을 환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업종이 여태껏 자신이 해온 일과 전혀 상관없다고 해도요?

네. 얼마 전에 JYH회사 소속 업체인 조이앤코에 면접을 봤어요. 조이앤코는 패션회사에요. 그런데 패션뿐만 아니라 매거진 제작도 하고 브랜딩이라는 개념에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어요. 사실 제 전공은 패션과는 다른 분야잖아요. 그럼에도 그 회사에 지원을 한 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그 회사의 특징과 제 라이프스타일이 들어맞았기 때문이에요. 동시에 사회에 다양한 가치의 기여를 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그곳에 지원을 했어요.

 

 

다들 자신의 강점을 찾으라고 하는데 역행적이네요.

요즘은 자기 스토리텔링을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그 방편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찾아 어필, 강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새로운 나를 만들수록 스토리텔링을 위한 자신의 이야기가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멘토가 있나요?

이호영 교수님이라고, 원래 저희 과 학장님이셨는데 3학년 2학기 때 학교를 나가셨어요. 지금은 브랜드 컨설팅을 하세요. 제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 분과 상담을 하는데 그 때 마다 가치 중심적으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사회적인 롤 모델은 JYH컴퍼니의 조수영 대표님이에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학교 후배들도 그렇고 대학생들이 많이 안타까워요. 자기 자신을 버리려고 하지 않아요. 처음 건축디자인학과가 공대로 소속을 옮겼을 때, 교수님이 예술과 공학이 섞여 융합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 가셨대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각자가 자기 것에만 고집을 피우니까. 그리고 존경하는 교수님께 하셨던 말이,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것들과 기존 가치관들을 대학교에서 다 버리고, 자신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대로 많은 것을 비우고자 노력했어요. 아버지의 생각과 기존 10대 때 영향을 받았던 것들 다요. 타과 수업을 들어보거나, 다른 친구의 디자인 방식을 배워서 따라 해보기도 했어요. 존경하는 특정 인물을 저에게 대입해서 생각하기도 하고요. 많은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고집하지 말고, 버리면서 다양한 분야와 새로운 것들을 융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를 버리면서 새로운 나를 얻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차근 차근 '지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남들과는 다른 욕심을 엿보였다. 그의 새로운 인생 건축물은 무엇일지, 기대해 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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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대학생인터뷰

  - 디노마드 대구 디렉터, 김민지


취재 혜은

사진 영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학점, 토익, 봉사활동이라는 바글바글한 스펙시장에서 길을 잃고 서있지 않는가? 여기에, 거기서 한 발 떨어져 자유로이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개성의 스텝들을 꾸려 매거진을 기획하는 여대생이 있다. 작은 체구로 통통 튀어다니며 디자인 매거진 <D.NOMADE>의 대구 지부를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 김민지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계명대학교 KAC 국제경영학을 전공하고 있고, 디노마드 대구 디렉터를 맡고 있는 스물 셋 김민지라고 합니다.




디노마드는가 뭔가요?
디노마드는 디자인 잡지입니다. 디자인 노마드, 디자인을 찾아나서는 유목민이라는 뜻이에요. 대학생들이 모여서 기획부터 편집까지 주축이 되어서 매거진을 만드는 게 중심이구요,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강연이나 전시, 증강현실 같은 사업을 통해 매거진을 계속 이끌어 나가고, 사업을 넓혀 나가고 있어요.




디노마드 지역 지부 디렉터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일단 매거진을 만드는 건 공통된 일이고, 대구 같은 경우는 디자인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하는 CSR팀이 있어요. 부산이나 대전, 광주 같은 다른 지부는 마케팅이나 기획을 주로 하는 PR랩이 있고요. 이런 팀들로 디노마드 자체를 홍보하는 거예요. 대구는 봉사활동으로 홍보를 하는 거죠. 그래서 대구에 있는 지역 아동센터나 공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을 찾아서 무료로 글라스데코를 해주고 있어요. 또 디자인 스토리지도 운영하구요.




디노마드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작년 7월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니 학교가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전공은 경영인데, 평소에 음악이나 디자인,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뭔가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대구에서는 딱히 그런 일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울을 가야겠다, 했죠. 서울엔 인디밴드도 많고, 레이블도 많으니까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홍대에 있는 모 레이블과, 디노마드, 두 군데에 이력서를 냈어요. 그러고 난 뒤 레이블은 사정이 있어서 못 가게 됐어요. 그리고 사실 디노마드는 지원 기간이 지나고 낸 거였는데, 지역에 지부를 만드는데 디렉터가 필요하다면서 서울에서 연락이 온 거에요. 어떻게 보면 정말 타이밍이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죠. 아, 그리고 결정
적으로.......



결정적으로?
디렉터라는 말에 되게 끌렸어요. (일동 웃음) 




그럼 원래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할 생각이었나 봐요.
네, 공연이나, 음반 기획이요. 그런데 평소 디자인 쪽에도 관심이 많았었고, 이 기회에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직접 그린 그림이나 일러스트도 독특하고 예쁘던데, 디자이너 할 생각은 없어요?
아유, 거기까진 아니고, 소소하게 동아리 모집 포스터 같은 걸 그려주거나,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정도에요. 또 직접 작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디자인을 어떤 공간에 꾸미거나 배치하는 걸 좋아해요.









디노마드의 매달 주제가 'ㅆㅂ' '아웃사이더' '꽐라' '69'등 굉장히 파격적인데, 이에 대한 생각은.
대학생이 만드는 잡지, 그 특유의 실험적인 주제로 컨텐츠를 기획한 다는 것은 항상 가슴이 뛰어요. 새로운 주제가 나올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떻게, 얼마나 발칙해질 수 있을까 하고 눈알과 머리를 굴려대는 순간이 요즘 저한텐 답답한 걸 배출하는데 최고에요. ‘ㅆㅂ’, ‘꽐라’, ‘69’와 같은 키워드만 본다면 그저 자극적이게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극적인 컨텐츠를 다루는 것만이 취지는 아니에요. ‘디노마드' 속에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진짜 속마음,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뿐이에요.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갖가지 이유로 표현을 안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숭이니 이미지니 뭐니 깨끗하지 못한 순수함으로 가식적인 포장을 해대면서. 대학생들이 모여 그런 고민들을 풀어내면서 생산하는 컨텐츠, 거기에 디노마드 특유의 가볍지 않은 솔직함이 녹아드는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이 간다거나, 기억에 남는 호가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최근 발간된 디노마드 매거진 '69' 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약 9개월 동안 함께한 초기 디노마드 대구지부 스텝들의 마지막 작업이거든요. ‘69’가 담고 있는 발칙한 암호를 떠올리며 우리 주변에 숨은 암호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풀어나갔던 작업이었는데 적어도 저한텐 꽤나 도전적인 주제였어요. 시시하지 않게 적당한 무게를 유지하면서 기획하고 싶었는데, 스텝들이랑 마음이 잘 맞아서 다행히 컨텐츠가 정말 잘 나왔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탈북 작가 선무님의 작품과 생각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깨닫는 부분이 많았구요. 작업하면서 스텝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새롭게 도전하고 싶거나 관심 가는 일은 있어요?
지금 디노마드 말고도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시작한지 한 달밖에 안돼서. 컨벤션에 관련된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컨벤션이라. 자세히 어떤 거예요?
컨벤션이라는 게, 굉장히 범위가 넓어요. 국제적인 회의나 포럼, 또 박람회, 쉽게 말해 유니브 엑스포 같은. 그 안의 전시나, 공연 같은 걸 모두 포함해서 기획하는 게 컨벤션이에요. 이번에 계대 축제하잖아요, 그때 저희 과랑 같이 클럽을 만들어서 칵테일 팔면서 시작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럼 지금 되게 바쁘겠네요?
그래서 지금 정신이 없어요. 어제도 칵테일 잔에 붙일 스티커 만든다고 막.(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큐레이팅 같은 거 해 보고 싶어요. 시각적으로 공간을 꾸미고,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전시, 그때 맞는 음악을 틀어놓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문화예술에 발을 담그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대구라는 도시는.
강의 기획을 많이 진행 하면서 대구에 계신 디자이너나, 아티스트 분들에게서 대구에서 이게 잘 되겠냐고, 힘들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구 지역 대학생들의 활동성에 대한 걱정이죠. 관심은 많은 데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인터넷이나, 매체에 잘 노출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우려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사실 그런 쪽으로만 해결이 된다면 정말 잘 될 수 있거든요.

디렉터를 맡은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솔직히 이걸 시작하기 전에는 사실 저부터도 뭘 찾을 생각이 없었어요. 대구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대구가 그럼 그렇지, 하면서. 불만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일을 시작하고부터 이쪽으로 관심을 가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움직임들이 눈에 활발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이전에 느끼기에도 대구가 항상 여건은 충분한데 잘 안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분명히 할 수 있거든요. 보면 퀄리티도 정말 좋고, 서울보다 대구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끈끈하고, 더 좋아요. 그래서 작업도 더 잘되고.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계속 대구에 있어도 될 것 같아요. 아니, 있을 거예요.




꿈을 얘기해주세요. 꿈?
꿈이라.......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럼 단기적인 목표라고 할까요?
일단 지금은 아직 내가 딱히 어떤 분야에서 잘한다고 생각되는 것도 없어서, 만족한다고 느낄 때까지 노력을 할 것 같아요. 목표는 그거에요. 힘든데 참고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거면, 그게 뭐가 되었든 끝까지 할 거에요.




프랑스 시골에 집 짓고 산다던지 그런 꿈은 없어요?
아, 그런 거 있어요. 아까 비슷하게 말했는데, 나이가 몇이 됐든 작업실을 만들고 싶어요. 복합 공간 같은. 술도 팔고 음료도 팔고, 음악도 틀고 영화도 틀고, 전시도 하고, 그런 공간을 갖는 게 꿈입니다.




모디에 대해, 그리고 모디에게.
모디가 만들어진 지 정말 초기에 봤었는데, 디노마드도 그렇고 그때 보다 지금 정말 훨-씬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모디가 하는 일들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대구 대학생들이 주가 되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퀄리티도 좋고, 내용도 대구 문화를 다루니까, 내가 몰랐던 대구의 소식들을 알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잡지인 것 같아요. 응원할거고, 앞으로도 계속 볼 거예요.



학교는 언제 갈 거예요?
한 2년 후에 돌아갈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색색의 그림만큼이나 하고픈 일이
많은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대구가 다채로운 복합공간이
되길 응원한다.


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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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대학생 인터뷰

 -  메이커스 대표 우상범 & 온문화 대표 주효준



"달을 향해 쏴라.

설사 달을 빗겨 가더라도 우주의 어느 별에 도달할 것이다.
(Shoot for the Moon, Even if you miss it, You will land among the stars.)"



전(前) 우주인 후보 ‘고 산’씨가 청년의 꿈과 미래에 관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청춘창업의 ‘춘추전국 시대’다. 너도나도 머리엔 창업아이템을 가슴엔 열정을 품고 창업에 도전한다.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청년 기업만큼 ‘경험부족’ ‘지식부족’ ‘끈기부족’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 현실에서는 달(목표)을 향한 청춘들의 열정과 도전은 자유일지라도 살아남아 어느 별에 도달하는 것(성공)조차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리는 행복인 것이다.


모디가 5월에 만나본 별난 대학생, ‘메이커스’ 우상범 씨와 ‘온문화’ 주효준 씨는 이런 점에서 소위 살아남은 청년 기업 CEO다. ‘메이커스’는 현재까지 4차례 이상의 소셜 콘서트를 개최 하면서 대구 문화예술의 새로운 부흥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에는 경북대가 주관한 ‘KNU 창업캠프 모의 경진대회’와 한국사회적기업 진흥원이 개최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 4월에는 ‘리쌍’과 ‘버벌진트’를 비롯한 지역 인디밴드들을 섭외해 개최한 ‘세가지불편한진실’이 성공리에 마무리 되면서 이제는 대구를 대표하는 청년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온문화’는 대구의 인디밴드들을 섭외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코앞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소외받는 지역 문화예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유니커즈를 비롯한 여러 대구 뮤지션들과 함께 ‘3GO 콘서트’를 열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인디밴드는 홍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들의 외침은 ‘대구인디콘서트’와 ‘대구문화예술기획단’ 등 다양한 방면으로 실현 중이다.



취재 제원, 진나, 여름
사진 여름




각자 자기소개와 하는 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메이커스’ 우상범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요. 청춘들을 위한 기업인만큼 그들이 궁금해 하고 필요로 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위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온문화’ 주효준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대구 문화예술분야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토는 ‘지역 문화 예술 활성화’ 이고 이를 위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연극이나 콘서트 등을 기획하고 있고 기존의 극단들과 함께 마케팅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우  무엇보다도 창업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밖에서 보기에 정말 재밌어 보였거든요. 떼돈을 벌 목적은 없었고 아직도 이런 문제로 걱정을 하지는 않아요. 저에겐 ‘메이커스’가 한번 밖에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이 일을 하면서 저와 제가 하는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금상첨화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이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전 20대 이후로 삶에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거든요. 지금 하는 사업도 처음엔 이런 쪽 일이 아니었는데 ‘힘들 때의 경험’과 ‘참 재밌다‘라는 느낌이 지금의 이 일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요즘도 일을 하다보면 밤을 새는 경우가 많은데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고 싶은걸 하다보면 현실에서 힘든 일에 부닥치기 마련이잖아요?



  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 쪽일을 직접 하다 보니 대구 시민들의 관심이 많이 저조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구의 문화예술 인프라는 전국에서도 내노라 할만큼 좋은 편이고 문화예술가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저조한 소비수준과 관심이 이를 상쇄시키는 거죠.


  저도 비슷한 의견이에요. 전 대구 사람이 아니라 경남 거제 출신인데 대구 문화를 이야기 하자면 수동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생들의 목적이 취업에 쏠려 있어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절대적 수치 자체가 미미하기도하지만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있더라도 그 관심은 TV와 수도권에서 주목하는 대형가수에 머물고 있죠.





힘든 점을 얘기하다보니 대구의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모습이 부각됐는데 청년 기업가로서 대구의 청춘들을 보는 모습이 어떤가요?



  대구에서 콘서트를 할 때 시민들의 선택은 콘텐츠의 수준보다는 금액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 같아요. 소득수준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이 선호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에 대한 선호가 위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열광만 하면 되는 수동적 패턴이다 보니까 자기에게 맞는 분야를 잘 알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관심과 소비한계도 떨어지는 거죠.


  사실 문화는 그 도시의 경제력과 관련되어 있어요. ‘메이커스’에서 십센치를 섭외하면 그 돈은 서울사람이 가져가거든요. 한 마디로 대구는 문화예술도시가 아니라 문화를 팔러오는 시장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대구 시민들도 지역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대구의 뮤지션들을 데리고 기획을 하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대구 청년들에게 뮤지션은 인기가 많으면 잘하는 거고 대중매체에 나오면 유명한 거죠.





지금 까지 말했던 대구의 문화예술에 대한 현실 속에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메이커스’란 회사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대구의 이런 현실 속에서 청춘들을 계몽시켜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게 아니에요. 저희가 직접 대구 문화예술에 뛰어들어 하나의 콘텐츠로서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거죠.


  ‘메이커스’가 콘텐츠를 생산해 분위기를 주도한다면 저희 ‘온문화’는 기존의 극단이나 문화생산을 하시던 분들과 더불어 그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해요. 대구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청춘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 문화예술의 활발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거죠.




메이커스 대표, 우상범




두 분 모두 아직 학생이신 것 치고는 또래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계시잖아요. 학교생활은 어때요?



  저는 건국대에 입학 했다가 자퇴를 하고 다시 수능을 봐서 경북대로 오게 됐어요. 들뜬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와 보니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의 주위 친구들이 주어진 상황과 조건 속에서만 아등바등 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대학생을 보내고 졸업할 때가 되면 인생의 목표가 취업이 되어버리는 친구들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어요. 결국 저도 저렇게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보다는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하기 시작 했고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경북대 중어중문학과 학생이에요. 처음에는 또래 친구들처럼 과 생활도 열심히 해서 과대까지 했어요. 하지만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바깥 세상을 경험하게 됐고 언젠가 뒤돌아보니 이미 학교에서는 부적응자가 되어있는 거예요.(웃음)그래서 지금은 휴학을 하고 제가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죠.






우상범 씨는 재학 중인 학생이고 주효준 씨도 휴학 중이긴 하지만 졸업 전이잖아요.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제 설명부터 하자면 전공은 건축공학과이고 꿈은 건축가에요. 지금은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있지만 건축가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에요. 이 일을 하다가 잘 안되면 다시 돌아 갈 테니 받아달라고 이미 교수님에게 말해놨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우선순위를 따져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가져갈 것은 가져가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아요.


  저는 거기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휴학을 더 하고 싶은데 한번 밖에 안 남았거든요. 지금은 사업 초기라서 일에 익숙지도 않은데 학업까지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 이 일을 5년만 더 하면 사업도 커지고 손에 익어 학업을 병행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제 전공은 필요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문제는 지금 하는 일에 제 전공이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인 것 같아요. 필요 없다면 학업을 포기하는 거죠. 저는 후에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할 생각이 있어서 힘들지만 학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요즘엔 삼십이 넘은 만학도들도 많잖아요. 제 사업이 자리를 잡고 학교를 다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함께 사업을 꾸려가는 친구 분들을 소개 해 줄 수 있나요?



  ‘메이커스’는 같이 일하는 친구가 저 말고 여섯 명이 더 있어요. 두 명은 군대 가기 전부터 사업 아이템을 같이 이야기 하던 친구들이고 세 명은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 되고 나서 들어온 친구들, 그리고 얼마 전 한 명이 더 늘어 총 여섯 명이에요. 이 친구들은 특징이 사업을 하면서도 걱정이 없고 불안해 하질 않아요. 집이 잘 살아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죠.


  ‘온문화’도 저 말고 같이 하는 사람이 여섯 명이 더 있어요. 같은 과 후배 두 명과 컨벤션에 잠시 다닐 때 알게 된 친구 그리고 계대 시각디자인과, 영대, 대가대 친구 해서 총 6명이죠. 컨벤션에 다닐 때 알게 된 친구는 지금 취직해 가끔 도와주고 있고, 후배 한 명은 중국에 있다가 저를 도와주려고 일부러 귀국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성실하고 창의적인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종태 라는 2인자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누군가 다마스 한 대를 끌면서 홍대 문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대구에도 홍대 같은 거리를 만들겠다며 다마스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어요.(웃음)




온문화 대표, 주효준




좋은 동료들과 확신에 찬 열정으로 일을 하더라도 청춘인 만큼 아픈 일도 생기잖아요. 걱정이나 고민은 없나요.



  고민은 매 순간 들고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아니다 라는 판단이 서면 언제든지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거든요. 포기 한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로 볼 수는 없어요. 나만의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망하기 전에 포기를 하는 것이 성공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게 반복되다 보면 초심과 현재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고민을 해야 되요.


  그런 점은 저도 항상 고민하는 중이에요. 어느 한 회사의 대표는 하는 일은 동료에 비해 적지만 선택의 순간이 너무나도 많아요. 성공해서 잘나가는 CEO들을 몇번 만나봤는데 떵떵거리며 고민 없이 사는 줄만 알았던 그분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대표는 선택으로 평가 받잖아요.






그럼 점에서 사업의 고민은 돈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금 사업의 재정은 수익이 나는 순환구조인가요 아직 투자 단계인가요?



  저희 ‘메이커스’의 경우에 매출은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순 이익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요. 물론 수익이 안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사무실도 마련했고,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내가 이 일에 지치지 않는 만큼은 벌고 있는 것 같아요.


  ‘온문화’는 매출액은 크지 않지만 조금씩 늘려가고 있어요. 의도치 않았지만 수익이 계속 나는 분야도 있고요. 동료들도 식구처럼 같이 가는 친구들이라 더 벌면 더 주고 덜 벌면 덜 주는 식이에요. 사실 돈도 중요하지만 청년기업인 만큼 진심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메이커스도 작년에 10cm를 섭외 할 때도 돈이 없기 때문에 진심으로 부딪쳤잖아요. 결국 그게 성공해서 ‘메이커스’가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청년 창업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꿈을 찾는 대구의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창업이라는 것이 ‘달콤한 독’이라고 생각해요. 성공을 하려면 전문성이나 독창성, 아니면 자본 중에 하나라도 확실해야 돼요. 지금 저희 회사는 깊이도 없고 자본도 없는 거품에 가깝죠. 사실 내일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거든요. 하지만 청년 기업은 좀 다른 점이, 청춘이라는 패기와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작은 독창성만 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해요. 이 말이 남들과 다른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실한 이유와 신념을 가진다면 무슨 일을 하던 그것이자기만의 색깔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도 아직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색깔을 찾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전문성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대학생이었던 저도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익숙한 분야도 생기고 사업이 커지면서 저 자신도 성장하고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찾는 거죠.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긋기보다는 무엇이든 부딪쳐 보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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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면서 가장 큰 고민들은 거의 대부분 진로와 취업에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공을 선택한 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해야 하는 일, 돈을 버는 일을 선택한다. 드물게는
돈이 되는 일을 포기하고 끔을 선택한다. 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뉘는
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다 잡을 수는 없을까?





R.A.I.N.M.A.K.E.R



글 지희
편집 솔지
취재 지희.영준
사진 영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와 사진영상디자인학과를 복수전공 중인 07학번 이만수입니다.




레인메이커라는 이름의 뜻은?
이름 후보로 여러 개가 있었는데, 메마른 우리나라의 뻔한 공무원식 영상계, 그러니까 영화를 포함해서 뻔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는 영상제작 현실에 단비를 내리겠다는 뜻으로 정했어요. 또 제 이름이 만수인데, 이게 한자로 일만 만자에 물 수라서 비를 불러오는 이름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어렸을 때 타지로 놀러 다니는 날에도 비가 많이 왔고, 타지 촬영 시에 비가 온 날이 많았어요. 이름에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어요 하하.





레인메이커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요?
이전부터 원래 일하시던 프로덕션 분들과 다른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고자, 그리고 인디 문화 예술을 홍보하고, 그런 것과 관련된 영상을 만들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어요. 제가 영상을 전공하긴 했지만 방송사나 다른 곳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영상 촬영을 했어요. KPI라고, 영상 촬영을 하는 교내 동아리였는데 그 일을 하는 중 계명대학교에서 창업 지원 제도가 성행하기 시작했어요. 혹시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냈는데 지원을 받게 된 거에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독립하게 되었어요. 점점 사진장비나 컴퓨터 등 장비가 늘어나고, 사람들도 모아지면서 레인메이커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거죠.





요즘 많이 바쁘세요? 인터뷰 일정을 잡기까지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어려웠어요!
사실 저희가 많이 바빠요. 오늘도 바쁘고요.......촬영 작업도 있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지금도 엄청 바빠요 사실(웃음). 돈만 벌려는 일을 한다면 사실 덜 바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저희는 돈과 관련 없이 하고 싶은 일도 같이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애당초 이 두 가지 일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긴 해요.





회사 내의 멤버가 5명인데, 각자 위계나 포지션은 어떻게 되나요?
레인메이커는 팀 개념의 회사에요. 제가 일단 대표라고 써져 있지만, 저희는 모두 공동대표이고 하나 하나가 모인 집단이에요. 따라서 수입도 모두 똑같이 나누는 협동조합 형식으로 이루어져있어요. 포지션의 경우에는 모든 멤버가 평등선상에서 모든 분야에 손을 대 볼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는 모두 똑같이 디렉터이자 여러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 엔터테이너니까요. 그래서 한쪽이 계속 영화를 찍으면 다른 한쪽은 계속 사운드를 담당한다는 식으로 정해두고 하지는 않아요. 상황을 고려해서 그때그때 역할을 정하죠. 다만 각자의 분야별 능력이 동일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잘하는 쪽에 따라 담당 비중이 다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 보조를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영상을 찍는 것은 적은 인원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영상 자체가 복합적인 요소가 섞인 거니까. 어려웠던 적은 없나요?
다른 것 보다 저희가 희소한 영상을 찍기 때문에 자본력이 조금 힘들어요. 이런 종류의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금전적으로 좀 더 부담이 되는 일이에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협조를 받기도 하지만 보통은 스스로가 헤쳐 나가는 거지요. 불편하긴  해도 결국은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냈던 것 같아요.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개인 작업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수입이 들어오니까 그래도 다행이지요.





영상 촬영을 취미로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직업으로 나선 계기가 있나요?
글쎄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라 원래부터 꾸준히 고민하고 생각해왔어요. 잘하던 일을 하면 돈을 더 잘 벌 것 같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있고. 사실 레인메이커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다른 방법도 있었어요. 큰 방송사에 들어간다던가. 그렇지만 제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려면 제가 스스로 만들고 그 길을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한 거죠.






레인메이커는 예술 영상을 촬영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직접 예술 기획들을 주최하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작년 <잘 차려진 예술밥상>이나, 방천 시장 김광석 거리 예술 시장 등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직접 도맡으셨는데, 주최까지 도맡는 이유가 있나요?
방천 시장의 경우도 그랬어요. 이전에 먼저 예술 시장이 벌어지고, 저희는 그것을 촬영을 하다 보니 아쉬워서 저희가 직접 열어보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벌인 일이에요. 저희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에요.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듯이. 문화 기획도 저희 예술 활동에 있어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단순하게 영상만을 찍거나 예술 활동에 특정한 종목을 정하지 않아요. 예술 기획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하고 싶어 했던 거였고요. 그 외에도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거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하는 거 에요. 또 그게 저희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순히 하나의 일만 맡고 빠지는 게 아니라 직접 작가적인 활동을 하는 거지요. 애당초 그것을 기획을 하는 것과 영상촬영을 하는 것, 둘로 나누는 게 이상하잖아요? 기획과 참여를 같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레인메이커만이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영상의 특징이 있나요?
레인메이커의 영상은 투박해요. 깔끔하지 않고, 테크니컬한 부분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게 많아요. 그게 저희가 만드는 레인메이커 만의 특징이에요. 방송국의 잘 빠지고 매끄러운 영상과 다른 느낌으로 전달하고자 해요. 정형화 된 영상보다는 보이는 영상 자체에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꾸미거나 보기 좋게 만들어진 영상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날것 까진 아니지만 “논리”보단 “감성”으로 와 닿는 영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그럼 영상을 촬영할 때, 대구만의 특징이 있나요? 이미지 적인 장점이라던가. 분위기라던가.
저희가 대구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도 같이 촬영하거든요. 근데.......대구가 습하잖아요. 찍을 때 아 정말 덥고 습해 보인다, 하는 이미지 정도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 이외에 특별한 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레인메이커로 활동하면서 “첫” 영상을 찍었을 때 기억나나요? 어땠어요?
다른 영상들도 있는데, <아트 워크 페스타>라고, <잘 차려진 예술 밥상>이전에 촬영했던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레인메이커가 찍고자 하는 영상을 담았어요. 준비할 때 처음에는 콧방귀 뀌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너희가 예술을 하면 얼마나 하겠냐?”라는 식으로. 그런데 찍으면서 친해진 사람도 많아지고,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영상이 나왔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 영상을 통해서 저희를 인정해주셨어요.









새롭게 준비하는 프로젝트나 영상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구 프로젝트를 새로 준비하고 있어요. 곧 지구의 날이잖아요. 식물에게 줄 수 있는 흙탕물을 커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사람들에게 주고,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면서 나무에게 줄 수 있게끔 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퍼포먼스 부스 활동과 동시에 그걸 영상으로 찍으려고요.





그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예술 프로젝트는 없나요?
동성로에 소셜 마켓을 점포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반짝 예술시장이 아니라, 꾸준히 예술 작가들의 물건을 받아서 팔아주는 가게를 만들어서 영업하고 싶어요. 고정적으로 예술 상점을 운영하면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벤트 행사도 열고자 해요.


우리나라가 그렇지만 대구는 특히 더 보수적이에요.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요. 그래서 보통의 대학생 작가들이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잘 못하는 현실이잖아요. 그리고 보통 예술 상품 같은 경우 작가의 브랜드를 런칭한 후 메이커를 붙여서 팔잖아요? 그런데 그게 불합리한 경우가 많아서 대학생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자기 작품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저희가 예술 상점을 만들어서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팔아주면 대학생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전공이나 다른 틀에 구애 받지 않고 저희처럼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수도 있겠죠. 그러면서 저희는 그 안에서 계속 만들고 싶은 영상 만들고.





앞으로 레인메이커의 운영 계획이나 목표는?
우선 내부적으로는 저희가 계속 진행하는 대로 평등하고 이상적인 회사구조를 만들어야죠. 그렇게 되면 개개인마다 장르에 상관없이 영상과 사진 등의 모든 예술작업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저희가 요즘 결혼 영상을 많이 찍어요. 그 이유가 결혼 영상이 너무 뻔해서. 화려하고 예쁜 것만을 보여주고자 하잖아요. 그래서 진정한 결혼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보고자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찍고 있어요. 결혼‘식’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결혼 다큐멘터리요. 다른 사람들은 이것도 예술일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정말 의미 있고 이것만한 예술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단 올해의 목표는 사회 초년생, 청년층 등의 결혼식 다큐멘터리를 공짜로 찍어준 후에 모아서 진정한 의미를 가진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예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레인메이커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선 영상 자체로는, 보여주는 영상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저희 영상을 봤을 때 신선하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영상이다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저희가 하는 활동 쪽으로는.......어쩌면 저희가 우리나라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알려진 일을 하는 거잖아요. 하고 싶은 일과 수입과 관련된 일이 동일 선상에 있는 것. 다들 이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 자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


아직도 주변에서는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을 모습을 보고 혀를 많이 차세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까, 도움이 될까 하는 식으로요. 그렇지만 우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일의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여지까지 우리나라에 없었으니까. 사실 아까 질문할 때 두 가지일, 두 마리 토끼라고 말하셨는데, 그게 왜 두 마리 토끼가 되는 걸까요? 한 마리 토끼잖아요. 애당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건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 는 일이 나누어 진 게 요즘 사회라고 생각해요.







레인메이커가 제작한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   http://therain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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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3월 중순. 영남대 정문에서 멀티탭이 기획한 첫 도깨비 시장이 열렸다. 느낌 있는 빈티지부터 아기자기한 액세서리까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완소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열정이 넘치는 아티스트들이 있는 그 현장에서 모디가 멀티탭 멤버들을 만났다.




M. u. l. t. i - t.a.p


글 고운
편집 솔지
취재 고운.승지
사진 승지



신상명세.
김민아: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과 10학번, 의류패션학과 복수전공
이수연: 계명대학교 국제통상학과 10학번
홍미지: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10학번, 패션디자인과 복수전공
김소정: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과 10학번






멀티탭 멤버들은 서로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저희는 다 고향 친구예요. 소정이 빼고는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소정이는 고등학교 때 알게 됐는데 서로 정말 잘 맞아서 이렇게 네 명이서 모이게 된 거예요.





멀티탭이 뭐하는 모임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웃음)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진흥시키자는 생각에서 만든 모임이에요. 패션, 미술,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분야의 가치를 알아내는 모임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모임 이름을 멀티탭으로 지은 이유는?
저희 모두 패션이나 예술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건 경영이나 무역 쪽이거든요. 아무래도 전공이 아니다보니까 관심 있는 분야가 멀게 느껴졌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겠지’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모임 이름을 멀티탭이라고 지은 거예요. 멀리 있다고 생각되는 예술을 우리가 가까이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자는 의미에서 전기 콘센트 멀티탭을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예술도 그렇고 패션도 그렇고 보통 지방에서 하는 것보다 서울이나 외국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희는 지방에 있어도 220V의 예술을 다 느끼고 싶어요. 대구에서 열심히. 그래서 블로그 이름도 ‘대구에서 패션하기’예요.






도깨비 시장을 열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다들 경상대를 다니다보니 장사를 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20살 때부터 각 학교 축제를 다니면서 야광봉과 폭죽을 팔고, 21살 어린이날에는 달성공원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팔았어요. 열심히 발로 뛰어가면서 장사를 하니까 재미도 있었고, 또 돈도 많이 벌어서 회식도 했어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저희가 관심이 있는 예술 쪽으로 연결을 한 거죠. 예전부터 프리마켓이라는 게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 번도 보지는 못 했거든요. 막연하게 아티스트들을 모아서 장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블로그에 적었는데 어느 날 그 글에 아티스트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시더라고요. 사실 뚜껑을 열 어보면 대구에 계신 아티스트 분들이 힘든 점이 많아요.








힘든 점이라면 구체적으로?
그 분들의 능력만큼 인정을 못 받고 계시는 거요. 프리마켓을 하고 싶었고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이제까지 대구에는 정식으로 하는 프리마켓이 없었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면 장사하다가 쫓겨나신 분들도 계세요. ‘배고픈 예술가’라는 말이 있는데, 예술가들은 꼭 배가 고파야 하나요? 그 분들이 안정된 장소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무명이고 학생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정받기가 힘들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 분들의 댓글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프리마켓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먼저 나서서 하지 않을 뿐, 다들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서울 홍대에는 프리마켓이 유명한데 대구에는 이런 문화가 없으니까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홍대 얘기를 하니까 궁금해지는데, 혹시 이번 도깨비 시장은 홍대 프리마켓을 벤치마킹한 건가요?
홍대에서 프리마켓을 하는 걸 알긴 하는데, 사실 가 본 적은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쉽게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벤치마킹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까 아티스트 분들이 먼저 댓글을 달아 주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깨비 시장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은 먼저 연락을 해 와서 같이 참여하게 된 건가요?
먼저 연락이 오신 분들도 있고, 저희가 아티스트 분들에게 홍보를 한 것도 있어요. 블로그, 페이스북이랑 각 학교 게시판에 포스터를 만들어서 올렸어요. 그 후에 신청서를 받아서 아티스트들을 모은 거예요.








참가신청은 신청서만 내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건가요?
일단 블로그를 통해서 신청서를 받고 있어요. 신청서를 보낼 때는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면 되요. 그럼 저희가 그걸 보고 확인전화로 물건의 수량과 질에 대해서 얘기를 한 후에 시장에서 만나는 거죠. 이번에 신청하신 분들은 거의 다 함께 하셨어요. 저희는 어떤 분들이든 환영합니다. 시장에 오셔서 조각을 해도 상관없어요.(웃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오시면 되요.





그렇게 모집된 아티스트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디자인과 학생도 있고, 예술과 아예 관련이 없는 전공을 가진 학생도 있어요. 식품영양학과 학생도 있어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패션 디자인과 시간강사님도 계시고, 직장 다니면서 참여하시는 분도 계세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서 저희도 참 신기해요.




플리마켓과 프리마켓을 같이 하게 된 이유는?
저희는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을 같이 하고 있어요. 프리마켓은 창작품이나 예술품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고, 플리마켓은 중고시장처럼 빈티지나 의류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서 파는 거예요. 만약 프리마켓만 한다면 사람들이 물건을 보러 왔을 때, 창작품만 있어서 부담감이 생길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 에 플리마켓도 함께 하는 거죠. 그리고 헌 책이나 CD 같이 이미 나온 예술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저희들끼리 말할 때는 플리마켓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플리랜서’, 프리마켓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프리랜서’라고 불러요.(웃음)





시내에도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대학교 앞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가 처음에 2.28공원이랑 두류공원에 연락을 해봤었는데, 법적으로 공원에서는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외에도 시장을 열 장소를 계속 찾았는데 쉽게 허락을 안 해주셨어요. 그 상황에서 저희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장소가 없으면 우리가 직접 찾아서 돌아다니자.’였어요. 아무래도 보통 시민들보다는 대학생들이 패션이나 예술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대학 앞 도깨비 시장’이라고 이름을 짓고 대학교를 찾아다니게 된 거죠.





장소를 찾는 게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준비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시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소가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장소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희가 시장을 여는게 기사화되거나 논란이 되면 그 장소와 관계자 분들에게 영향이 가는 거니까 그분들은 당연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수창동에 있는 예술 발전소에 기획서를 들고 찾아갔는데 연락이 없으셔서 범어역에 있는 범어 아트 스트리트에 찾아갔었어요. 그 곳이랑은 지금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예요. 일단 밖에서 먼저 시작해보라고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도깨비 시장 홍보는 어떤 식으로 했나요?
홍보는 인터넷상으로만 하고 있어요. 포스터를 만들어서 블로그, 페이스북이랑 각 학교 게시판에 올리는 정도예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웃음) 사실 대학교 안에 포스터를 붙였었는데 허락을 안 받고 불법으로 붙여서 다 뜯겼어요.





앞으로는 온라인 중심으로 계속 홍보를 할 예정인가요?
네. 페이스북을 좀 키우고 싶어요. 지금 페이스북에 홍보하는 채널이 있긴 한데, 아직 몇 명 없어요. 도깨비 시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드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랑 함께 하고 싶어요. 앞으로 홍보는 계속 페이스북이나 개인 블로그 위주로 갈 것 같아요. 저희가 사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라서 오프라인으로 크게 홍보를 할 돈은 없어요.(웃음) 나중에 이 시장이 좀 더 크고 수익이 생기면 벽보 같은 것도 붙이고 하겠죠?





다음 도깨비 시장은 어디에서 열리나요?
안 그래도 아까 아티스트 분들이랑 얘기를 해봤는데, 대가대 분들이 좀 계셔서 대가대에서 하자는 얘기가 나왔었어요. 저희 회의에서 얘기한 장소로는 계명대나 경북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빨리 장소를 찾아서 더 많은 분들을 모집해야죠.




1회 도깨비시장에 참여한 Artist
고윤진/김세인/박건우/백목련/오찬송/이유진/홍지혜/홀홀




혹시 도깨비 시장 말고도 멀티탭에서 계획하고 있는 다른 건 없나요?
패션 캠프도 열고 싶어요. 패션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TV 프로그램 ‘프로젝트 렌웨이 코리아’를 보면서 생각해 본 아이디어예요. 그리고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싶어요. ‘스타일쉐어’라는 어플이 있는데 이 어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컨텐츠를 제공하고 소통해요. 저희가 만들고 싶은 커뮤니티도 그런 거예요. 저희가 제공하는 정보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다 같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목표예요. 사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게 가장 최종적인 목표예요.





이건 좀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멀티탭에게 예술이란?
예술이란 신민아의 몸매다. 저희가 정말 추구하지만, 아직 가지지 못했으니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가슴이 뛰고, 이런 걸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희는 저희를 홍보할 때, ‘소소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저희 안에서도 사실 완벽한 아티스트는 아직 없어요. 오늘 도깨비 시장에 나오신 분들을 포함해서 저희도 다들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예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과정에 있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 혼자만 생각하지 마시고, 나와서 같이하면서 선의의 경쟁도 하고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얘기하면 재밌기도 하잖아요. 혹시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저희에게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그런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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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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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스웨거 '내가 내다!'
대구 래퍼 '리플로(Reflow)'


취재 민정 지희

사진 제인제이


자기소개 부탁해요.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과 07학번 박주형입니다. 대학생이지만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이 리플로(Reflow)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리플로'라는 이름의 뜻은?
별다른 뜻은 없어요. 19살 때 이름을 지었는데, 당시에 flow라는 단어가 들어간 예명이 유행이라 썼어요. 사람들에게 좀 더 각인될 만한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 이름으로 오래 활동했고 앨범도 냈기 때문에 섣불리 바꿀 수가 없더라고요.


래퍼들의 예명도 유행이 있군요.
네, 제가 이름을 지을 때는 flow가 유행이었는데 요즘은 J가 유행이에요. Jay-Z, J Cole, Jay Sean 이런 시람들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JJK, Jay Moon, J-Tong등 J가 들어가는 예명을 쓰는 래퍼가 늘어났어요



힙합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13살에 처음 힙합을 듣고, 17살 때 처음 가사를 썼어요. 그때 온라인 힙합커뮤니티에 랩을 올려보긴 했지만, 공연을 하지는 않았어요. 공연을 포함해 제대로 된 활동을 시작한 건 스무 살부터예요.



혼자 취미로도 즐길 수 있을 텐데, 정식으로 래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살 때 제가 대구에서 처음으로 싸이퍼를 주최했던 게 계기였어요. '싸이퍼'는 길거리에 둥글게 모여서 라디오로 비트를 틀어놓고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어 랩을 하는 거예요. 그때 대구에는 싸이퍼가 열린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싸이퍼를 함께 할 사람을 모았죠. 붐 박스도 없이 길거리 허공에다가 랩을 했죠. 고3이라서 다른 분께 싸이퍼를 넘겨드렸는데, 수능치고 돌아갔더니 그새 많이 발전했더라고요.

모이는 사람도 많아지니 취미로해오던 일에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싸이퍼 모임 사람들 소개로 알게 된 레이블, "인디053"에 찾아갔어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함께 작업실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사람들이 들을 거니까 제대로 하자. 나는 이걸 직업으로 삼겠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어요. 가사도 이때부터 무거워졌고요.





그 이후로도 계속 길거리에서 공연하신 거예요?
힙합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힙합은 음악이 아니에요. 힙합은 하나의 문화에요. 힙합문화에서 주로 보이는 게 랩이나 춤, 음악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그라피티도 있고 스트릿 패션도 있고 다양해요. 그것들의 공통점은 모든 시작이 길거리라는 거에요.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힙합 음악을 하고 있다면 길거리에서 싸이퍼도 하고 공연도 하는게 자연스러운 거죠. 그 당시에 대구가 힙합으로는 불모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리자 하는 생각도 있어서 일부러 길거리에서 한 것도 있어요. 장비 챙기고 가서 무작정 거리공연을 많이 했죠. 동성로 한복판에서도 공연하고 국채보상공원, 2.28 공원, 예전 아카데미 극장 앞에서도 해봤고 두류공원 쪽에 가서도 해봤 고, 여러 군데서 했어요.



길거리공연을 넘어서 클럽으로도 진출하셨잖아요. 처음 클럽공연 하시던 날 기억하세요?
2007년 8월에 처음으로, 지금은 없어진 '버블'이라는 클럽에서 공연했어요. 당시 인디053에서 정식으로 앨범도 내신 형들이 있었는데, 그 형들 공연의 공연으로 들어갔어요. 그땐 저 혼자가 아니라 3인조 팀이었어요. 셋이 좁은 무대에서 공연했죠.



이후 계속해서 클럽공연을 이어가셨나요?
이후 4개월 동안은 길거리 공연만 하다가 그해 12월에 다시 클럽공연을 했어요. 제가 진정한 첫 공연으로 생각하는 공연이에요. 저희가 직접 기획했거든요. 그게 '다이나마이크'에요.



'장기하'는 군대에서 작곡을 많이 했다는데, 리플로는 군대 가서 가사를 많이 썼나요?
21살에 군대에 갔는데, 전 운 좋게 행정병이었어요. 모 아니면 도다 하는 심정으로 선임들한테 "밖에서 랩을 하다가 왔습니다. 여기서도 쉬는 시간에 가사를 쓰겠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뜻밖에 이해해주시고 흔쾌히 승낙하시더라고요. 대신 노래방에 많이 끌려 다녔지만-(웃음).



전역하고 나서의 활동은?
전역하고 보니, 예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활동을 접고 실력 쌓는 데 집중했어요.전 모든 비즈니스의 첫 번째는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언론플레이로 인기 끌고 대충하는 아이돌들은 당장은 몰라도 얼마 못 가요. 지금까지 가요계에 거장으로 계신 분들은 다 실력이 좋은 분들이시잖아요. 휴학하면서 오전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에는 작업실에서 가사 쓰고 녹음을 했어요. 6개월 동안 빠짐없이 하루에 한 벌스(verse)씩 썼어요. '원 데이 원 벌스(one day one verse)'라고도 하는데, 하루에 한 곡씩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좀 떳떳해졌죠.



이후에 ADV크루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ADV크루'와 '인디053'의 차이를 말해주세요.
인디053은 레이블이고 ADV는 크루에요. 레이블은 제가 다니는 회사고 크루는 음악으로 맺어진 가족이라생각하면 돼요. 음악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사생활까지 공유할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는 모임이죠. 정말 가족같이.



ADV는 서울을 지역적 기반으로 삼고 있잖아요? 어떻게 들어가시게 된 거에요?
하루는 저희가 싸이퍼를 열었는데 권썩이라는 래퍼가 나온 거에요. 서울 사람인데 대구에서 전경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그 형과 친해지고, 형 인맥으로 첫 다이나마이크 공연에 JJK라는 래퍼를 게스트로 부를 수 있었어요. JJK는 ADV크루의 리더인데 고향이 대구에요. 공연 이후 JJK형과 연락하면서 가사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러던 중 형이 "너는 가능성 있다. 내가 너를 ADV 멤버만큼 신경을 쓰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ADV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죠. 처음엔 크루 내에서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멤버들과의 교류가 중요한데 거리 차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제 곡을 들어본 후 크루 안에 필요한 음악 스타일이라 판단을 하고 저를 받아주셨어요. 그렇게 2010년 9월에 ADV크루에 들어가게 됐어요.




ADV크루에 들어가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대구에 있기 때문에 맴버들처럼 서울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어요. 또, 그리고 서울은 본격적인 씬이기 때문에 준비된 것 없이 무작정 공연을 할 수도 업고요. 본격적인 씬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명함이 있어야 하잖아요. 래퍼한테는 앨범이 명함이니, 앨범이 필요했죠. 그래서 믹스테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네이버 지식인에 보니까 '믹스테입(mixtape)이 뭔가요?'라고 질문이 엄청나게 올라와 있더라고요. 믹스테입은 뭔가요?
믹스테입은 쉽게 말해서 데모테입이에요. 무료로 공개해서 사람들한테 '나 이런 사람이에요'하고 다
가가는 용도로 쓰여요. 저도 일단 인지도부터 쌓자하는 마음으로 첫 믹스테입을 준비했죠.



첫 번째 믹스테입 준비과정은?
처음이라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했어요. 2010년 9월에 ADV크루에 들어가면서 준비하기 시작해서 2011년 9월에 나왔으니까 꼬박 1년이 걸렸죠. 곡이 하나 만들어지면 시험 삼아 다이나마이크공연에 올리기도 하면서 작업했어요.



새 싱글 (11월 16일 발매) '내가 내다'의 트랙 소개부탁해요.
앨범 제목 자체가 벌써 "내가 내다" 잖아요? 여기서부터 '지역부심'을 볼 수 있어요. 사투리를 내세웠죠. '내가 내다'라는 건 말 그대로 경상도 스웨거예요. 1번 트랙 '내가 내다.'는 쓸데없는 자기 자랑이에요. 대구 힙합을 자랑하는 거죠. 들었을 때 신 나고는 공연하기 좋은 곡을 원해서 만들었어요. 2번 트랙 '몰래 들어'는 정확하게 말하면 '네 랩 별로니까 혼자 몰래 들어'에요. 한국 힙합씬 자체가 커지면서 랩을 하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랩을 못하면서 실력 쌓을 생각은 안 하고 무작정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실력이 부족해서 매일 훈련을 했었는데, 겉멋만 든 애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무턱대고 래퍼 행세하면서 활동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 곡도 역시 신 나는 분위기에요. 3번 트랙 '나이에 맞게'는 나이에 맞게 꿈 좀 꾸라는 노래에요. 저는 지금 꿈을 좇는 사람이고, 또 꿈을 좇을 나이라고 생각해요. 꿈도 없고, 현실을 직시해서 노력하는 것도 아닌, 그냥 어중간하게 "직장을 구해서 평범하게 살겠다.'라는 생각은 도둑 심보죠. 안타깝게도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 보여요. 그런 애들한테 전하는 곡이에요. 꿈 좀 꾸라고 나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Who am I'라는 곡의 가사에 '뒷장을 넘겨도 오! 언제나 All 100 그게 나의 점수니까'라는 게 있던데, 새 싱글 앨범에 점수를 준다면?
제 점수는요? (웃음) 제가 점수를 매긴다는 게 웃기지만 100점 만점에 85점 정도?(웃음)



어떤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고,요즘은 누구의 팬인지?
너무 많은데. 우선 JJK는 제 스승이고, 17살 때부터 좋아했어요. 제 랩을 듣고 JJK스럽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랩은 JJK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공연은 미국 래퍼 T.I(티아이)에요. 가사 내 라임의 배치에 대해서는 Rakim(라킴)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같이 무대에 서고 싶은 혹은 같이 곡 작업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바스코(Vasco) 형과 진짜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어요. 제가 한국 래퍼 중에 공연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에요.



래퍼로서 라임, 스웨거, 펀치 라인, 플로우, 그루브 등 가사를 쓰는 스킬이나 래핑 스킬을 가졌을 텐데 어떤 게 리플로의 가장 큰 무기인가요?
제 무기는 라임이에요. 힙합에서 가장 기본이 라임이고, 랩에서 라임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라임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래퍼들이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리플로 역시 그런가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어릴 땐 다독왕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웃음)



본인이 쓴 가사 중에 이건 내가 썼지만 괜찮다- 생각했던 건 없나요?
'Who am I'에서 '본명으로 못 밟은 땅 Reflow는 해냈고'라는 가사를 좋아해요. 박주형이란 이름으로는 서울에 못 갔지만 리플로라는 이름은 서울에 알려졌다는 거죠. 그리고 12월에 나올 믹스테입 intro에 '인재들의 홍수 여긴 판옵티콘 감시에 눈에 벗어난 탈옥수 Yeah me 필요한 건 방주 내가 노아가 될 테니 다 꽉 잡아라 밧줄'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똑같은 인재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나는 다른 존재고, 나를 비롯한 다른 존재들에 방주가 되어주겠다는 뜻의 가산데 마음에 들어요.



지역 자부심이 높다고 하셨는데,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활동하면 얻는 장점은 뭐고 단점은 뭔가요?
여기가 고향이라는 것 자체가 가장 좋은 점이죠. 마음이 편하잖아요? 사람은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
에요. 단점이라면 대구는 여전히 씬이며 시장이 작아요. 서울의 반의반도 안 되죠. 그리고 아직 언더
그라운드 래퍼가 별로 없어요. 믹스테입이라도 하나 낸 래퍼가 거의 없어서. 속상해요. 여기도 랩 잘
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외적으로는 대구에는 래퍼가 없는거나 마찬가지니 답답하죠. 아직 다른 지역
에 알릴만한 콘텐츠가 부족 하다는 점이 항상 아쉬워요.

서울이 본격적인 씬이라고 아까 말했는데 그건 사실 대외적인 인식이고, 제 생각은 달라요. 많은 친구들과 동생들이 "대구에서는 못한다."하고 서울로 갔는데 전 대구를 버릴 수가 없었어요. 여긴 제가 처음 시작한 곳이니까요. 부산은 지방임에도 자체적인 씬이 있어요. 대구에서도, 지역 힙합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노력했죠. 서울에서 활동하게 되더라도 대구를 버릴 생각은 없어요. 다이나마이크 공연은 무조건 설 거고요.

제가 항상 가사에 '대구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로 지역을 드러내는데, 절대 저랑 대구를 뗄 수 없죠. 요즘은 인터넷, SNS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아서 굳이 서울의 기획사에다 시디 내밀 필요가 없어요. 대구에서 스스로 노력하면 대구 힙합씬 자체가 더 발전할거고, 지역에 있는 친구들이 기반을 다져나갈 수 있어요.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멀리 볼 줄 알아야 해요.


"가장 좋은 마케팅은
좋은 콘텐츠다'라는 생각으로

실력을 최우선시하니까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신 것같아요.




대구에는 어디서 힙합공연을 볼 수 있나요?
라이브인디와 헤비라는 클럽에서 볼 수 있어요. 라이브인디는 다이나마이크 공연이 첫 힙합공연이었
고, 헤비는 '힙합트레인'이라는 공연브랜드가 첫 힙합공연이었어요. 근데 힙합트레인은 대구 힙합 원
로 분들이 서울에 가시면서 공연이 조금 힘들어졌어요. 저는 다이나마이크뿐만 아니라 힙합트레인에
도 서고 있어요.



2007년부터 '다이나마이크'라는 공연 브랜드를 만들어서 활동하셨는데, 어떤 분들과 함께 공연을 기획
하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해요.
다이나마이크라는 공연 브랜드를 만드는데 전폭적인 후원을 해주신 인디053대표 김창원 씨, 기획자인 신동우 씨, 그리고 섭외나 뮤지션 관리를 맡는 저 이렇게 3명이 주축이에요. 무대에 서는 래퍼는 매번 다른데 다이나마이크는 열린 공연이라서 소속 레이블 상관없이 래퍼를 섭외해요.



리플로를 비롯해서 대구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의 자료를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나요?
다이나 마이크 관련 정보를 보고 싶으시면 www.dynamic053.net으로, 힙합과 관련된 전반적인 걸 다 보고 싶으시다면 힙합플레이야 www.hiphopplaya.co)로 들어오시면 돼요.



'박주형'과 '리플로'는 괴리가 큰가요?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똑같아요. 믹스테입 수록곡 'Just me'에서 '리플로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를 때 박주형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리플로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어요. 동네 돌아다닐 때도 박주형이고 공연장에서도 박주형인데, 공연할 때 "박주형"이라고 하면 이상하니까 "리플로"라고 하는 거죠 뭐(웃음)



아직 학생이시지만, 음악이 주 수익원이신가요?
수익을 따지면 음원 수익만으론 부족하죠. 그래서 레슨도 하고 있어요. 공연은 아직 수익이 많이 안나요. 제가 다 만들어서 하는 공연이다 보니까 수익이나기 어렵죠.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세요?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세요. 제대 후 랩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반대가 컸죠. 그때 '음악도 세상에
무수한 직업 중의 하나다. 직장이 곧 직업이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뮤지션이 미래가 불투명하다지만,
회사원이라고 미래가 투명한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설득반포기반으로 지켜보고 계시죠. 요즘은 공연 안하느냐, 나는 왜 안 불러주느냐 하고 먼저 물으시기도 해요.




리플로는 요즘 어떤 꿈을 꾸나요?
흔한 질문이자 어려운 질문인데. 음악을 하는 제 일상 자체가 꿈같아요. 내일도 모레도 가사 쓰고, 녹음하고, 공연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현실이 계속 이어지는 게 꿈이죠.



사람들에게 어떤 래퍼로 남고 싶나요?
아직 생각해본 적 없어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계속 대구 래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리플로 하면 대
구, 하고 떠오르도록. 대구 래퍼 리플로.



12월에 두 번째 믹스테입이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할게요.
첫 번째 믹스테입이 저를 알리는 용도였다면 이번 믹스테입은 내 생각이 뭔지를 말하는 거에요. 아예 무료로 공개해줄 테니 내 요즘 이야기나 들어봐라, 이런 거죠. 불만 쌓인 걸 좀 풀었어요. 욕하는 트랙도 많고(웃음) 서정적인 트랙은 잘 못해서 사랑 노래는 없어요.



식상하지만, 리플로에게 힙합이란? 혹은 랩이란?
아까도 말했지만, 랩은 이제 저한테 삶 그 자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는 자연스러운 행동 중 하나, 생활의 일부에요. 또 직업이고, 꿈이고, 저를지탱하는 것이죠.



'모디'를 라임으로 즉석에서 랩 한 번?
여긴 모디? 모두 여기 모디! (웃음)




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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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재미진 봉사활동

청년봉GO 


취재 영희, 민정

사진 chyam, 청년봉GO



+ 자기소개 부탁해요.
예, 안녕하세요. 저는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09학번 김영준이구요. 쑥스럽지만‘ 청년봉GO’ 기획 총괄을 맡았습니다.



+‘ 청년봉GO’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먼저 ‘청년봉GO’는 ‘청년들이여 연탄나눔 봉사하러 GO!GO!(이하청년봉GO)’를 줄인 말인데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연탄을 배달한 청년단체입니다.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제 매년 겨울마다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예요.


+‘ 청년봉GO’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그냥 친구들끼리 막연히 “우리 술 먹는 돈 모아서 좋은 일 좀 하자!” 이렇게 시작했어요. 근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사정상 참여 못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래서 사람을 더 모으게 된거예요.


+ 어떤 활동을 기획한 게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주위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있나요?
제가 메세지팩토리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 메세지팩토리는 처음에는 강연 위주의 사업을 하다가 청년들에게 새로운 메세지를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팀이에요. 제가 친구들 열 명이서 2만원씩 모아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했더니 메세지 팩토리 대표인 경민이 형이 저희 열 명이 모여서 기획을 하고 다른 대학생들을 더 모아서 같이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일이 조금씩 조금씩 커졌어요.
(수료식을 준비하고 계시던 노경민 씨 : 기획을 안 해봤다 길래 제가 기획서 샘플을 좀 보내줬는데 영준이가 바로 기획서를 쓰더라구요.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영준이가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볼펜으로 적어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그게 마음이 너무 이뻤어요.)



+ 왜 연탄배달을 선택하셨나요?
요즘은 도시가스나 기름보일러를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진짜 어려운 분들은 아직 연탄을 쓰시거든요. 겨울도 오고,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하는 연탄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봉사도 막 진지하게 가슴에 대의를 품고! 하는게 아니라 재미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모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기니까 ‘함께’할 수 있는 봉사활동으로 연탄배달을 생각하게 됐어요.



+ 대구에 연탄을 필요로 하는 가정이 얼마나 되나요?
저희가 복지관과 구청 등에서 받은 명단으로는 150가구 이상이에요. 그런데 저희 받은 명단은 일부라서 다른 지역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겠죠. 북구청에 가서 기왕이면 한동네를 다 하고 싶다고 하니까 침산동을 소개시켜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침산동 사회복지사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명단을 받았고 서구와 남rn에서도 연탄배달을 진행했어요.




+ 각 가정에 몇 장씩 배달이 된 거에요?
많이 간 집은 400장이 갔구요. 평균적으로 거의 200장 배달해드렸어요. 보통 한 달에 90장 정도를 쓰신대요. 정부나 구청, 복지관 등에서 일 년에 300장씩 후원을 받는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시대요. 그래서 저희가 그 부족분을 채워드린 거에요.



+ 기획단을 제외한 봉사활동 서포터즈를 모집했다고 들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봉사단을 모으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게 어려웠어요.(웃음) 처음엔 서포터즈 50명을 모집할 생각이었는데 150분이 지원하신 거에요. 근데 예상 인원보다 많이 지원하게 되니까 그게 감당이 안 되는거죠. 마지막에 저희와 같이하신 분은 130여분이에요.



+ 그럼 나머지 20명은?
아, 저희가 뭐 떨어뜨리거나 한 건 아니에요. 동참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150분 중에서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된 분들이 나가시고 130명이 남은 거예요.




+ 130명이 ‘잘’ 활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나 친구들도 ‘기획’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정말 많이 갈팡질팡했어요. 프로그램 진행도 진행이지만, 서포터즈 분들을 더 잘 챙기고 싶은 욕심도 있고. 서포터즈 분들이 너무 열심히 해주셔서 고맙고 보람됐어요. 시험 기간에도 80% 이상은 회의에 참여해주시고...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니까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하고 이런 과정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거예요(웃음) 고마울 따름입니다.


+ 모금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기획단이 4만원씩, 서포터즈가 2만원씩 후원을 했는데 좀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모금 활동을 진행하게 됐어요. 중부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해서 모금활동 허가를 받고 10월 28일에 시내에서 모금을 했는데 이동팀과 고정팀으로 나눠서 활동을 했어요. 이동팀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모금 활동을 했고 고정팀은 정해진 장소에서 계속 모금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적게는 2만원. 많게는 30만원을 개인적으로 후원 해주신 분들도 있었고, 연탄 배달 당일 도시락을 후원해 준 업체도 있었어요. 저희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공감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 보통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돈을 후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청년봉GO는 이웃과의 스킨십이 있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웃 들을 만나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가 직접 가정에 방문을 해서 연탄 배달을 했잖아요. 연탄 200장 받는걸 되게 미안해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 같은 사람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리고 저희 돌아갈 때 뭐라도 주시고 싶어서 집에 있는거 없는거 다 꺼내 주시더라구요. 어떤 분은 쌀 살 돈으로 음료수를 사서 저희한테 주시는데 그런 것들이 정말 짠했어요.



+ 마지막으로, 덩신에게 봉사활동이란?
봉사 활동을 되게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돈이 엄청 많아야 될 것 같고, 단체에 지원해서 활동해야 될 것 같고 또 시간도 엄청 많이 투자해야 될 것 같고. 그런데 하고 싶은 마음, 따듯한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혼자가 힘들다면 모여서 함께하면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함께’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바쁘시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자기 주변을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봉사 활동이 베푸는 게 아니라 봉사 하는 사람이 배우는 게 더 많은거더라구요.



[청년봉GO 서포터즈]
계명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이예림, 계명대학교 경영학과 경북대학교 고분자공학과 정준협, 계명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이하 이, 박, 정, 류)



+어떤 계기로 청년봉GO에 참여하게 됐어요?
저는 기획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생과 친했어요. 그래서 ‘좋은 취지로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현재 어떤 과정 중에 있다, 뭐 이런 얘기를 계속 들어왔거든요. 자연스럽게 제가 주위에 홍보도 하고 그러다가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함여하게 됐어요.

저도 기획단 친구가 과 동기거든요. 저도 친구가 하는 활동을 홍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네요. 기획단 친구보다 제가 더 열심히 사람을 모은 것 같아요(웃음) 이 저는 학교 게시판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어요.



+ 서포터즈들은 2만원씩 후원했다고 들었어요. 2만원이 생긴다! 그러면 평소에는 뭘 했을까요?
술을 마시겠죠. 음, 주로 술을 마셨던 것 같네요.

아뇨, 저는 자기계발? 채,책을 살 것 같네요^^;;

친구들이랑 밥 먹고 커피마시고...그러다보면 금방 쓸 것 같아요.

2만원이 생기면...다들 비슷비슷하게 쓰지 않을까요? 자기를 위해서 쓰는거죠. 그런 점에서‘ 나’를 위해 썼던 돈을 ‘너’나 ‘우리’를 위해 썼다는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 시내 모금 활동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저희가 이동팀이랑 고정팀으로 나눠서 모금을 했는데 이동팀은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다니면서 모금을 진행했어요. 고정팀은 지정된 장소에서 연탄을 두거나, 연탄 인형으로 분장하거나, 피켓을 들고 서있었어요. 우리가 어떤 취지로 연탄배달을 하게 됐는지 전시하듯이 홍보한거죠.

처음에는 좀 암울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되니까...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죠. 근데 그게 막말로 길 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500원 쫌!!”이런거에요.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아, 후원은 동전으로도 받았어요. 연탄 한 장이 400원이거든요. 그래서 100원 동전 하나, 500원 동전 하나도 굉장히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렸어요. 그랬기 때문에 부담 없이 후원을 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분들이 또 후원을 하기도 하고...



+ 10월부터. 많이 바빴잖아요. 시험도 있었고. 힘들지 않았어요?
이 활동자체가 기업에서 후원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시작한 일이잖아요. 사람이 모이니까 일이 커지고 이런 과정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그러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니까 시험기간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만났어요. 그러니까...힘들었지만 기분 좋은 힘듦이었다는 말이죠!




+ 부모님들이 봉사한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던가요?
저희 조에서는 한 친구의 부모님이 좋은 일에 쓴다고 직접 기부를 더 하셨어요. 아무래도 자식들을 통해서 기부나 봉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게 아닐까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죠.

저는 다른 지방에 살거든요. 전화를 해서 “엄마! 나 봉사해!” 이랬더니 “이노무 짜슥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러시는 거예요. 근데 일이 진행되는 걸 계속 알려드리고 설명 드리니까 이왕 시작한 일 열심히 하라고...더 많이 응원해 주시더라구요(웃음).





+ 봉사하는 사람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기획단이 기획을 했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포터즈들도 같이 기획을 했거든요. 그래서 소미션을 수행하는데 조별로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가 특색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일을 진행해나가는 그런 시간들이 되게 의미 있었어요.

그리고 청년봉GO 활동을 하면서 타학교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 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저도 봉사를 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다들 엄청 친해요. 가족 같기도 하고. 아마 커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없지만 물밑작업이...오늘 고백 타임도 있다던데?!

그런건...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웃음) 다들 즐거웠어요, 정말. *



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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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애니팡? 심해서 래시 몹!

심플 봉사단 단장  박 재 현


'심심하니까 애니팡이나 할까?'가 아닌

'심심한데 플래시 몹 한 번 해볼까?'하는 별난 대학생이 있다.

바로 심심해서 플래시몹, 줄여서 '심플'의 단장 박재현이다


취재 민정 사진 유영 편집 뉴진






+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영남대학교 도시공학과 04학번 박재현이라고 합니다. 2009년 영남대학교 천마응원단 11대 단장, 2010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학생 홍보단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생 홍보단에서 만난 친구들과 '심플'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플래시 몹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 '플래시 몹(flash mob)'이란?

단어적인 정의로 플래시몹은 '사용자가 갑자기 증가하는 현상'이란 뜻의 '플래시 크라우드(flash crowd)'와' '뜻을 같이하는 군중'이란 뜻의 '스마트 몹(Smart mob)'의 합성어로, 온라인에서 특정한 날짜, 시각에 정해진 장소를 공지하고 불특정의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안에 주어진 행동을 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뜻해요. 쉽게 말해서 저희가 하는 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깜짝쇼라고 할 수있겠네요.




+ 플래시 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회 홍보수단으로 플래시 몹을 사용했어요. 당시 홍보단에 대학생 수가 엄청나 많았어요. 그 학생들이 직접 참여를 해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만들어야 했는데 쉽게 할 수 있는 게 춤처럼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 아니면 인원수로 뭔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적합하겠다 싶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는 데 그중에서 홍보단원들이 가장 많이 참여할 수 있고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파급효과가 큰 플래시 몹이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플래시 몹을 기획하게 됐죠.



+ 플래시 몹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요. 그리고 거기서 오는 희열이 있어요. 점점 더 나를 보여주고 싶어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오는 짜릿함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거잖아요. 남들 모르게 준비를 해서 놀라게 한다. 거기서 오는 짜릿함에 다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더 해지는 재미도 있고요.




+ '심플'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지?

아직 '심플은 어떤 집단이다.'라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는 않았어요. 육상대회 홍보단 활동을 하면서 서울과 부산에서 홍보 플래시몹을 했었어요. 반응이 좋아서 결국 홍보단이 하는 주된 홍보 활동이 플래시 몹이 됐어요. 많은 홍보단원이 참여해서 재미있게 하다보니까 그때 재미를 느꼈던 사람들이 대회가 끝나고 나서 좀 아쉬운 거죠. 그 아쉬움으로 '심플'을 만들고 다시 플래시 몹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 때 주축이었던 사람들 세 명 정도가 다시 모이게 됐죠.





+ '심플'(심심해서 플래시 몹)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은?

뜻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심심해서 플래시 몹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 '간단하다'는 플래시 몹 고유의 성질도 담고 있고 모임도 가볍고 공연도 가볍고 어떤 제약도 없이 심플하게 사람들과 의 친목을 위해서만 만난다는 의미가 있죠.





+ 운영진 세 분이 플래시몹 참가자분들과 소모임형태로 모이시는 건가요? 특별한 운영체계가 있는 건 아니고요?

네. 운영체계가 있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운영진으로 있는 사람이 5명이고 퍼포먼스에 직접 참여하시는 분들이 마흔 분 정도있어요. 운영진이 처음에는 3명이었는데 지금은 5명이 되었고요. 퍼포먼스 참여자가 1기, 2기, 3기, 3.5기로 네 번의 플래시몹에서 고정인원 스물 다섯 분 정도에 유동적인 참가자가 스무 분 내외로 평균적으로 마흔 분 정도가 참여하셨어요. 우리가 심플을 계속 운영하려면 가진 게 없어야 해요. 돈을 받아서도 안 되고 봉사활동 시간이라든지 어떤 대가를 줘서도 안 되고 운영진이나 참가자나 모두 평등한 느낌으로 만나기를 원해요. 그래서 사실 운영진도 운영진이라고 안 부르고 봉사단이라고 부르거든요. 봉사단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우리는 그냥 이 모임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역할과 플래시 몹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준 비를 하는 정도가 다라는 거죠.







+ 사람을 모을 때는 모여서 먼저 기획을 하고 '이런 기획이니까 와 서 재미있게 놀자!' 하고 공고를 하시는 거에요?

컨셉에 대한 건 일단 얘기를 안 해요. 제일 중요한 건 연습을 올 수 있느냐이기 때문에 연습 날짜 중심으로 공지해요. 그리고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까지 공지하죠. 물론 받는 것도 없고요. 한 번 플래시 몹을 할 때 3일 정도 연습을 해요.





+ 이때까지 '심플'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우리가 다시 플래시 몹을 해보자 하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처음에 사람이 잘 안 모였어요. 왜 그랬냐 하면 육상대회홍보단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안에서 맴버를 모았기 때문이었어요. 육상대회홍보단이라는 타이틀이 있을 때랑은 다르게 저희가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홍보단이랑 심플이랑은 느낌 자체가 다르잖아요. 똑같이 플래시 몹을 하지만 세계적인 대회 홍보단의 활동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거랑 우리끼리 그냥 노는 거랑은 전혀 다른 거니까요. 그래서 2기부터는 저희가 학교마다 사람 모집 공고를 마구 뿌렸죠. 핵심 맴버들만 모여서 연습을 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는 영상을 제공해서 '연습해 오세요.' 하고 어느 날 몇 시에 어디서 한다만 공지하는 게 일반적인 플래시 몹의 형태이긴 해요.

하지만 저희는 그렇게는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심플은 목적이 하 나가 더 있기 때문이죠. 잠시 모여서 즐겁게 퍼포먼스를 하고 헤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대학생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해요. 특정학교가 중심이 되지 않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열린 커뮤니티가 됐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오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정보도 주고 받으면서 모두 친구가 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사전 모임부터 모든 게 저희는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게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커플안무를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게 친해지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 '심플'에서 나아가서 '심플 커뮤니티'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술 마시고 노는 대학생이 아닌 건전한 대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남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사람을 술이 아닌 다른 계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은 거에요. 플래시 몹이라는 놀이가 눈에 보이는 목적이긴 하지만 진짜 목적은 '사람'인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 플래시 몹을 기획하면서 혹은 퍼포먼스를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
는 에피소드 있나요?

심플을 하면서 연애 상담을 많이 하게 됐어요. 모임을 이끄는 처지다 보니까 보호자 같은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안에서 커플이 생기는 일도 있죠. 진행 중도 있고.



+ 본의 아니게 커플 메신저 같은 역할을 맡고 계시네요.

그래서 짜증이 나요. 정작 저는 여자친구가 없는데. (좌중 폭소)




+ 참여자들 연령대가?

남자분들은 스물넷에서 스물다섯이 대부분이고 여자분들은 스물 하나에서 스물넷까지 다양하게 계세요.




+ 전에 재현 씨가 다른 매체랑 했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거
기서 '내가 기획한 플래시 몹 공연은 건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성의 표현이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키다리 아저씨 아르바이트를 해요. 풍선 불어주는 키다리 아저씨, 제가 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학교에서 왕따인 친구를 한 명 만났어요. 중3 여자애였는데. 이 친구랑 이야기를 해보니까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지금은 몸 안 좋은 아버지랑 늙은 고모랑 같이 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친구는 항상 '가출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자살이나 성범죄 같은 게 가정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반성'이라는 건 뭐.. 우리가 오빠고 형이고 그렇잖아요. 저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죠. 다 그렇진 않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건전한 자신감의 표현이에요. 나중에 가정환경 영향으로 '삐뚤어진' 게 아니라 '어두워진' 아이들을 모아서 심리치료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 플래시 몹이라는 게 모르는 사람들이랑 순간적이지만 마음을 열고 어울리는 거잖아요. 재현 씨는 모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신가요?

학교응원단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여자가 앞에 있으면 말을 잘 못하고 얼굴이 잘 빨개지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응원단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환호를 즐길 줄 알게 되면서 제가 많이 바뀌었거든요. 제가 그런 변화를 겪었으니까 누구나 이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 소극적이었던 분이 갑자기 응원단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항상 마음 속에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늘 했었고 그 당시에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야지 하는 마음도 강했거든요. 1학년 2학기에 기숙사에 붙어있던 동아리 모집 포스터 중에 응원단 포스터를 보고 문자를 보냈어요. '혹시 키 작아도 할 수 있나요?'라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 '심플'이 꾸고 있는 꿈과 '박재현' 개인이 꾸고 있는 꿈?

일단 '심플'은 좀 더 단단한 체계를 갖춰야 해요.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려면 뭔가 그럴듯한 구실이 필요하거든요. 그저 '심플'의 구성원이다는 소속감만으로는 그 구실이 부족한 것 같아요. 기획의 부분은 왕따를 치료하는 심리치료 심플, 이미지 개선사업이나 인식 개선 사업을 하는 심플 그게 이렇게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공기관의 복지청이라든지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기업과 연결이 돼서 우리가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심플'은 덩치가 너무 커져 버리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요. 학생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운영되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꾸는 꿈 역시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다.'라는 거에요. 그리고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감동을 주고 또 감동 받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공연 기획자. 더 나아가서는 그냥 오락적인 공연이 아닌 좋은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 플래시 몹이 사실 지금 막 나온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플래
시 몹 다음의 또는 더 발전된 형태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셨나요?

플래시 몹의 다음이라면 '공연'이겠죠. 플래시 몹도 일종의 공연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일단 우리는 색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색이 없이 대학생들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우린 이 걸로 돈을 번다거나 사업을 해서도 안 돼요. 그걸 다 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인원수가 많이 필요한 메스게임 같은 게 될 수 있겠네요. 메스게임은 플래시 몹은 아니죠. 하나의 그림을 만들려면 필요한 인원수가 일정 이상 채워져야 하고 체계적인 연습 과정을 거치는 계획된 공연이니까요.




+ 심플의 앞으로의 일정은?

3.5기 활동까지 해서 네 번의 플래시 몹 퍼포먼스를 마쳤고 아마 조만간 MT를 가지 않을까 싶어요. 계획된 다음 플래시 몹 퍼포먼스는 아직 없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 '심플'을 만들 때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이걸 해도 될까? 할수 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고민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 때 같이 해준 사람들이 있죠. 김나윤, 김민철 그 둘과 응원단 선배인데 김선규 선배라고 있어요. 그분들한테 정말 감사하단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심플이 있는 건 나라는 한 사람도 크지만, 그 사람들이 없었으면 이만큼 잘 유지가 됐을지도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심플'은 지금의 기본정신을 가지고 잘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 촌스러운 표현이긴 한데 착한 대학생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이 퍽퍽하게 살고 있지만 꿈을 쫓는 늙지 않는 피터 팬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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