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여행,
겨울바다로 떠나다.






글·최현지 편집·성림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작년 이맘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그 때를
추억하며 스물다섯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나는 겨울이 되면 꼭 바다로 떠난다. 보통의 사람들은 여름 바다로 떠나기 마련인데, 나는 겨울 바다를 더 사랑한다. 이유인 즉, 여름바다는 혼자 놀 수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모여들고, 고요한 풍경을 담을 수 없고, 고독을 즐길 수 없으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여행’의 목적과 의미가 어정쩡한 위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겨울바다는 추운 날씨로 소수의 사람들이 바다를 감상하고, 혼자 놀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으며, 바다 자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해를 바다와 같이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만한 이유라면 겨울바다를 사랑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가! 그래서 작년과 더불어 올해도 어김없이 바다로 떠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에 맞서 떠났던 2012년 겨울의정동진,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해운대로 떠나고 있다.





‘고요함 속 빛나는 그 곳’
정동진






작년 이맘 때 떠났던 정동진. 이른 새벽, 무궁화 열차를 타고 무려 5시간만에 도착했던 그 곳. 어렴풋이 a.m 6:00 도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예상과 다르게 비가 와서 기대했던 일출을 볼 순 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오후쯤에는 날씨가 풀려 찬란한 바다 위 태양을 바라보며 한해를 뜻 깊게 정돈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체로 바다를 보기 위해선 먼 거리의 바다를 떠올리지만, 그에 비해 정동진은 넓은 바다가 펼쳐진 정동진 역에 도착한다. 정동진역은 동해남부선, 삼척선, 영동선 모두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철도 노선으로, 이들 노선의 기차역들 중 해안 가까이에 있는 역들이 많지만, 정동진역처럼 해안에 바싹 붙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17년 전의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이 곳은 고요하고 한가로운 어촌 마을이자, 관광지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바다여행 장소이다. 특히 정초에 새해 일출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이곳 넓은 해변과 역사 주변이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 내가 여행했던 이맘 때, 그 곳은 흐리고 비 오는 날씨였는데,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찻길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며, 가슴 두근대는 겨울 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그때를 되짚어보면, 파도와 바람이 거세지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실내로 자리를 옮기는 틈에 나는 친구와 함께 고요한 바다를 사진 속에 담고, 모래사장을 놀이터 삼아, 젖은 모래를 노트 삼아 이런 저런 글씨도 새기고, 모레시계공원을 산책하면서 내가 사는 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정동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정동진은 ‘고요함 속의 빛남’이라 표현할 수 있는 여행지다.

겨울바다엔 많은 사연들이 있고 그 이야기엔 다양한 맛들이 담겨져 있다. 사랑을 시작한 커플들의 달콤한 여행,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기위한 씁쓸한 여행, 일상을 주체하지 못하고 떠나온 매콤한 여행, 친구들과의 짭짤하고 유쾌한 여행 등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와 사연들을 상상할 수 있다. 단순한 물놀이가 아닌, 이유 있는 여행, 나에게 겨울 바다는 그런 의미다.





‘영화의 거리, 청춘의 거리’
해운대






여름 바다하면, 떠오르는 곳, 해운대! 그러나 겨울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하게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오히려 여름보다 더 알찬 해운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작년보다 추위가 보름 정
도 빨라 올해는 좀 더 이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a.m 11:00 무궁화호 기차를 탄다. 나는 무궁화호 기차가 참 좋다. 특히 여행이라면 무조건 단 1분의 망설임도 없이 표를 끊는다. 급하게, 시간을 정해두고 떠나기보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조급함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 그래야, 여행이 끝날 쯤에, 많은 것을 담아올 수 있다. 채워진 게 많으면, 다시 채우기 힘들기 마련. 버릴 것은 버리고, 다시금 채울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서 여행을 떠난다. 부산 역에 도착한다. 당연 정동진역과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도심 속에서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버스를 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건널목’으로 불리는 미포건널목. 영화 해운대와 CF촬영지로 유명한 이 곳에선 푸른 바다와 드넓은 하늘, 그 사이의 철길과 골목의 감각적인 풍경들을 담을 수 있다. 도착할 쯤이 해질 무렵 전이었다. 그 무렵, 저 먼 수평선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달렸다. 참 오랜만에 바다 풍경에 반해서, 나도 모르게 바다 쪽으로 향했다. 아직, 내 안의 감성이 살아있구나, 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떨림이 없다면, 그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아직 나는 ‘청춘’이고 지금 내가 달리는 이 곳은 바로 청춘의 거리다.



아쉬운 소식 하나. 곧 이설되는 동해 남부선(동해바다를 따라 남쪽지방을 달리는 기찻길).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미포의 달리는 기차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 그리워도 볼 수 없음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고 있다. 참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아파하지 않는다. 그 자리, 그 순간의 가슴 떨림과 손 시림, 아름다웠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사진과 영상으로도 담았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청춘의 시기가 잊어질 쯤, 다시금 꺼내어 볼 수 있는 순간들을 살포시 간직한다. 참 아름다웠다. 잊어지지 않는다. 해질 무렵, 저 먼 바다로 이어지는 수평선, 그 위로 태양이 있다. 스물다섯, 나의 청춘이 끝나난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시금 떠오를 청춘을 위해 활짝 웃어본다. 올해의 마지막 찬 바다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아일랜드 시인이자, 소설가 오스카와일드가 말했다.


‘젊은이들은 별 이유없이 웃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매 력 중의 하나이다.’


젊을 때 웃어야지, 그래야 더욱 웃음과 기쁨이 빛나기 마련이다. 요즘 청춘들은 왜 그 쉽고 좋은 매력을 발산하지 않는 걸까... 어렵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떠난다는 것. 어렵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가장 쉬운 일이다. 그냥 ‘웃으며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 것이 바로 이유 있는 여행의 시작이자, 결말이다.
‘웃으며 떠났다가, 웃으며, 돌아오는 여행’ 그 것이 나의 ‘겨울여행’이다.


또 다른 시인 롱펠로우가 말한다. ‘청춘은 우리의 인생에서 단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
나는 답한다. ‘나는 인생에서 단 한번 뿐인, 빛나는 청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이다. 믿고, 즐기라. 그럼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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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성호랑이 2014.02.03 07: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해운대 맛집도 많지요-! 행복한 하루되세요!~ㅎㅎ




지방음대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세 번째 유럽 도전기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이번이 세번째다.




글레스톤베리 두 번째 입성


드디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영국)1)에 참가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라 비아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더욱 기분 좋은 일은, 비아를 대하는 태도와 비아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거다. 이전에 우리는 스텝공간에서 묵어야만 했다. 올해 다시 찾은 비아의 숙소는 더 좋아지고 공연시간도 좋은 시간 대로 옮겨져 있었다.


글레스톤베리에서 공식적인 공연을 두 번 예정되었다. 하지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사실 어디나 다 공연이 가능한 자유로운 곳이다. 우리가 있었던 그린필드 구역 옆에는 히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힐링필드가 있었다. 그쪽 공터에 낡은 피아노가 있었는데 조율이 되어 있고 소리도 훌륭했다. 우리는 이곳을 주 무대로삼았다. 5일 동안 거의 매일을 여기서 버스킹을 했다. 공연을 하게 되면서 런던에서 “피아노 가라오케”란 직업의 아줌마 피아니스트 질리 스펜서 씨를 알게 되었다. 우리와 질리는 힐링필드 낡은 피아노를 서로 번갈아 치며, 공연도 하고 콜라보도 했다. 공연이 재밌다는 소문이 났는지, 영국 BBC와 여러 외신이 취재를 해왔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이 많았던 5일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 저녁에는 비아의 글레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이 토드홀에서 열렸다. 우리를 초대해 준 그린피스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두 공연에 참석해 주었다. 분위기는 최고였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는 앵콜을 잘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공연이 끝나자 모두들 앵콜을 외쳤다. 그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러블리 비아'가 되어 있었다. 그린피스 사람들은 내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도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유럽 곳곳에 아리랑을 들려주다



비아의 유럽이동경로



축제가 끝난 다음날 7명의 멤버 중 두 명은 일정상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두 번째 참가를 대성공으로 마무리하며, 나머지 다섯 멤버는 도버해협을 건너 네델란드로 향했다. 몇 번의 버스킹을 하고 우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했다. 세 번의 유럽 투어 중 북유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코펜하겐에는 ‘김치페스티벌’2)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의 숙소와 여러 편의를 제공해주신 오대환 목사님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꿈을 가지고 덴마크로 들어 온 한인이 260명이죠. 하지만 한국인 입양아는 8000명이나 되죠.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가 덴마크인들에게 일본음식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한국의 인지도가 낮아요. 한국의 맛과 멋을 알리고 2만 명의 입양아 가족들에게 한국이 자랑스럽게 느끼시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에서 우리는 한 아름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한국의 문화를, 아리랑을, 이 땅에서 연주하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느꼈다.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돌려 우리는 독일로 향했다. 비아가 사랑하는 독일 남부의 생태 도시 프라이브룩과 바덴바덴, 프랑크프르트, 하이델베르그에서 버스킹 공연을 했다. 특히 하이델베르그는 2009년 처음 유럽투어 때부터 알게 된 하이델베르그 시내의 유명가게인 “애나의 초콜렛집”이 있는 곳이다. 벌써 그 가게 앞에서 3번째 공연을 하게 됐다. 매년 이곳을 들린 것에 감격하신 할머니는 “다음에 오면 그땐 꼭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자. 내가 공연장을 알아볼게.”라며 고마운 약속을 해주셨다.



애나의 초콜릿집 앞에서의 버스킹



40일의 유럽 일정 중 반이 지나갈 때쯤 우리는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2번째 방문이었다. 2011년 첫 번째 비아가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했었는데, 그 곳에서 우리의 세 번째 투어 소식을 듣고는 다시 하우스콘서트를 부탁하셨다. 공연 때 집주인 내외가 가까운 친구들을 불렀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장을 빌려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떻냐라는 제의를 하셨다. 아쉽게도 이제 일정이 10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유럽투어 마지막 나라인 프랑스였다. 정든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역으로 이동했다. 프랑스 남부의 여름은 낮 기온이 39도까지 오를만큼 아주 더웠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곳은 캠핑장이었는데, 이곳은 나름 체인점 형태를 가진 규모가 컸다. 거기선 매일 저녁 이벤트가 열렸는데, 우리도 그곳에서 공연을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인기는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댄스타임에 메인곡은 강남스타일이었고 노래에 맞추어 남녀노소 모두가 말춤을 일사불란하게 따라했다. 캠핑장에서의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파리로 이동했다. 파리로 오기 전 가야금을 연주했던 멤버가 좀 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비뇽의 숙소에 데려다 주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7명의 멤버가 이제 4명의 멤버가 되어 세 번째 아리랑을 들려주러 온 투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파리에 도착하여 떠나기 전까지 하루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파리 버스킹의 메카 퐁피두센터와 에펠탑이 보이는 사이오궁 앞에서 공연을 했다.


오래 전 유럽여행을 꿈꾸며 봤던 수많은 여행 책자 속에는 세계의 굉장한 거리공연자들만이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3번의 유럽 투어 동안 늘 퐁피두센터에서 공연을 빼놓지 않았다. 비아가 공연을 시작하면 기존의 퐁피두센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온다. 비아가 한복을 입고 연주를 시작하면 연주가 끝날 때 까지 그 곳, 그 시간은 온전히 우리가 주인공이 되었다.





사실 퐁피두센터뿐만이 아니다. 감격스럽게도 유럽에서 공연한 모든 곳에서 우리는 관심과 환대를 받았다. 이번 여행에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연주했다. 또다시 잊을 수 없는 40일의 기억과 함께 우리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6월부터 8월까지 3번에 걸쳐 귀한 지면을 허락해줘서 고맙다. 아직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서 잠시 멈춘다. 하지만 지방음대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유럽 도전기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여행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



글|송힘·편집|은민




1) 글래스톤베리 현대 예술 페스티벌 (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은 세계에서 가장 큰 노천에서 벌어지는 음악 및 행위예술 축제이다. 현대 음악 및 가요 축제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서커스, 극, 코미디, 춤, 카바레 등 다양한 예술 축제도 열린다. Wikipedia
2) Kimchi festival in Denmark ( 덴마크 김치축제 2013.07.06 )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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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포니
편집. 미경

 

 

평화로운 어느 날, 미지의 생명체가 인간 세계에 침투한다. 그 생명체는 인간의 뇌를 뚫고 들어가 장악한다.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동시에 인간의 몸으로 일종의 ‘보호색’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들을 기생수라 부른다.

 

 

 

 

기생수들은 인간을 잡아먹음으로 생존하고 동시에 인간 종의 개체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인공 신이치의 몸에 침투한 기생 생물은 뇌까지 점령하지 못하고 오른팔만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적으로 사망한 것과 다름없는 다른 기생생물과는 달리, 신이치의 몸에는 사이좋게 한 몸에 두 생명이 공존하게 된다. 기생수들은 가정에서 학교로, 사회로 활동반경을 넓혀간다. 신이치의 엄마가 죽고 신이치를 짝사랑했던 친구가 죽는다. 그것을 계기로 강해진 신이치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생생물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가장 압도적인 힘을 지닌, ‘끝판 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신이치는 생각한다. 자신에게 정의란 인류구원도, 여러 생물들과의 공존도 아닌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란 것과 그리고, 지구의 생명으로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허락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지구의 주인이 되어버린 인간들. 인간이라는 종의 수를 줄이려는 기생수를 인간들은 ‘적’, ‘살인귀’, ‘침략자’라고 부른다. 인간의 수를 줄여 독과 오염과 파괴를 막는 것. 그리하여 인간 중심의 지구가, 모든 생물 중심의 지구가 되었으면 하는 게 기생수의 바람 vs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저지르는 괴생명체들을 제거하고 평화를 되찾는 것. 그리하여 원래의 리듬을 유지하며 지구의 주인으로써 권력과 일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바람. 아무튼 입장 차이 때문에 밥그릇 싸움하는 건 여느 생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우리 모두는 기생수가 아닐까.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함께 살 부비고 이야기 나눌 공간이 필요한. 그 공간을 포근히 만들어 줄 또 다른 생물과. 우리가 포근하게 만들어줘야 할 또 다른 생명들. 더불어 사는 것. <함께>라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아닌 ‘모든 것들’, 그것들과 함께 숨 쉬고 낡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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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큰고개역의 큰고개는 정말 "큰" 고개인가?

두번째 나댐_1호선 큰고개역

 

글. 혜은 편집. 현지

 

* 참고 -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앞서 대공원을 다녀온 후, 아직 의구심이 사그라지지 않은 역들이 몇몇 있었기에 이번 나댐에서도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큰고개역. 한자어로 된 다른 역들과 달리 너무도 순진스러운 한글 이름의 이 역은 읽는 그대로 해석 됩니다. 큰, 고개. 큰고개는 큰고개 오거리와 파티마병원 사이에 있었던 큰 재로, 걸어서 겨우 넘어갈 정도여서 옛 부터 큰고개로 불렸다고 합니다.

 

얼마나 컸기에 역 이름으로까지 지정되었으며, 그 고개가 과연 지금도 남아있을까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일단 큰고개역으로 향했습니다. 큰고개 오거리의 중심을 마주할 수 있는 3번 출구로 나온 저는 오거리의 활기찬 교통상황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표지판은 각각 ‘파티마 병원’, ‘복현 오거리’, ‘동구청’ ‘만촌 네거리’ ‘동대구역’ 을 큼지막한 화살표로 가리켰습니다. 파티마 병원 방면의 ‘큰 고개’는 다행히 완전히 평평하게 깎이지는 않아서 ‘큰 경사의 도로’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동북로를 따라 큰 고개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높은 오르막은 아니었지만 다른 도로들보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평지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부분 밋밋한 대구도로 중에서, 버스를 타고 갈 때 그나마 내리막의 속도감이 느껴지던 죽전네거리 구 병원 방면 도로의 약 2배 정도였다고 할까요.
‘큰고개 목욕탕’, ‘큰고개 식당’, ‘큰고개 성당’등 ‘큰고개’라는 호를 달고 있는 상점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지역명 때문에 으레 지어진 게 아닌 실제로 ‘큰고개’위에 자리 잡은 ‘큰고개 목욕탕’은 마치 성산 일출봉에 있는 일출봉식당같은 당당함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에게 큰고개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여(여기)가 옛날에 큰 재였거든. 나무 해가(해서) 지고 다닐 때 고개가 높아서, 그래가 큰 고개라 한 거야. 동화사, 파계사 가는 길목 말고는 대구 시내에서는 여(여기)가 제일 높아.”

 

큰고개역은 현재 오거리명칭(큰고개오거리)을 따라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현 아양초교 앞에는 작은 고개가 있었고, 500m쯤 오면 조금 높은 길이 있었는데 (현 신암전화국 동편) 이 길을 ‘큰고개’라 불렀으며,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공산면 일대의 주민들이 땔감을 팔러 다니던 고갯길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큰 고개가 꽤나 높고 꼬불꼬불 했던 길로서 지겟군은 몇번을 쉬어 넘었고, 소달구지도 뒤에서 밀고 밀어 겨우 넘었으며 일제 중기에 나온 목탄차도 헐떡이며 넘다가 엔진이 꺼지면 다시 시동을 걸어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고갯길은 일제시에 대구-하양-영천을 잇는 국도가 개설되면서 차차 길이 넓어지기 시작하여 1950년에서 1977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친 국도 확장 공사로 높았던 고갯길이 계속 낮아져 지금은 35m의 넓고 완만한 고개로 변하여 옛날 큰 고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저씨의 자전거와 함께 고개를 오르다보니 어느 새 큰 고개 위에 우뚝 선 파티마 병원이 보이고, 그제야 평평한 도로가 펼쳐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큰고개를 두발로 차근차근 밟아보고 나니 마치 올레길을 완주한 것 같은 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 반고개 이야기
반고개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개라 하여 '반고개'라 불렀는데 이것이 구전되어 오면서 '밤고개'로 변형, 명명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곳 주민들은 이 고개 부근에는 오래 전부터 밤나무 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서 밤고개라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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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이번이 세번째다.

                - 지방 음대 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세 번째 유럽 도전기.
                   두번째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글. 송힘(비아트리오 매니저)

 

 

#0.
세 번의 준비,
조금은 노련해진
우리들

  유럽투어 이틀 전, 드디어 4집 음반을 대구에서 택배로 받았다. 이전엔 항상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음반을 받았는데 이번엔 이틀 전에 받았으니 소중한 하루를 번 셈이다. 이렇게 번 하루를 이용해 음반을 선(先)주문 한 분들에게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 함께 발송했다.

  분주하지만 이전보단 확실히 노련해진 솜씨로 짐을 쌌다. 우리가 노련해졌다는 것은 짐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처음 유럽 갈 준비를 할 땐 필요한 물품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하도 많이 사서 택배가 매일 사무실에 왔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해간 것들 중 투어 내내 한번을 사용 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이젠 세 번째 아닌가. 잘 안 산다. 빌리거나 없이 지낸다. 2013년 6월 21일, 이렇게 아리랑 공연을 위한 우리의 세 번째 유럽투어의 날이 다가왔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지만 3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차질 없이 출국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먼저, 들고 온 짐들을 화물칸에 실기 위해 사람들 뒤로 줄을 섰다. 다행이 두 번째 유럽 투어 때, 키보드를 영국에 두고 와서 짐의 무게 제한을 초과할 위험을 줄였다. 그래도 40일간의 연주여행인 만큼 개인 악기와, 판매할 음반, 각종 짐들을 다하면 수하물 무게 제한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걱정했다. 저번 여행 땐 짐이 너무 많아서 결국 집으로 보냈다가 다시 비싼 돈을 들여 다른 비행기(항공 우편)를 통해 받은 적이 있었다. 가야금 때문에 조금의 문제는 있었지만 돌려보내는 물건 없이 모든 물건을 비행기에 실을 수 있었다. 무사히 짐을 싣고 파리 드골 공항으로 출발했다.

  12시간 후. 파리 시간으로 오후 6시, 우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입국심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는 해외여행을 해봤다면 한번쯤 거쳤을 꽤나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다. 괜한 영어 울렁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리 드골 공항의 입국심사는 지금껏 어떤 나라의 공항과 비교해도 간단했다. 여권 사진과 얼굴을 한 번 씩 번갈아 본 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고는 그냥 통과였다. 그 흔한 “왜 왔냐?”라는 질문조차 없었다.

 

 

#1
고난
리스(lease;장기대여)한
차는 어디에?

  하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총 5명의 멤버 중 3명은 아시아나, 2명은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시아나 비행기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먼저 온 세 명이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차를 찾아오기로 했다. 그 세 명 중에서도 한 명은 짐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차를 찾으러 갔다. 우리가 있던 곳은 터미널 1이었는데 차는 터미널 3으로 가야 찾을 수 있었다. 드골공항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드골공항은 파리 대표 국제공항으로 비행기 횟수기준 유럽에서 제일 바쁜 공항이다) 터미널 3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공항전철을 타고 어느 정도 나간 뒤 2km 정도를 더 걸어가야만 터미널3이 나온 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혼자 짐을 지키고 있는 멤버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예상 했던 시간과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을 타고 늦게 출발한 2명의 멤버가 도착하기 전에 차를 찾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한 시라도 빨리 차를 찾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무작정 터미널 3으로 출발했다. 터미널 3에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차 대리점이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직원은 프랑스식 영어로 열심히 가르쳐 줬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들은 단어-문장이 아닌 단어는-사실 몇 단어 되지 않았다.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린 다 알아 들은 척 “메르씨(merci)”와 “땡큐”를 번갈아 외치며 다시 주차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알아들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차를 찾든 대리점 찾든 결판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넓디 넓은 주차장에서 공항 직원에게 얻은 알아듣지도 못한 힌트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다시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묻기로 했다. 직원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데 웬 잘생긴 프랑스 청년이 나를 빤히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차를 빌린 대리점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프랑스인이 이렇게 반갑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럭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차를 찾았으니 멤버들을 찾으러 가야했다.

 

 

 

 

#2
고난
2시간 동안
주차장에 갇히다

  차를 찾고 얼마 되지 않아, 늦게 출발한 2명의 멤버가 터미널 3으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터미널 3에 있던 우리는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한국은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프랑스는 쌀쌀한 날씨였다.) 멤버들을 태우고 터미널 1에 남아 짐을 지키는 마지막 멤버를 찾으러 갔다.

  문제는 주차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생겼다. 공항 안쪽에 있는 무인 기계에서 주차비용을 다 지불하고 난 뒤 출구에 있는 기계에 넣었는데 자꾸 토해내는 것이었다.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주차권을 넣었는데 정산기계마저도 티켓을 토해냈다. 스피커폰에 대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스피커 속 직원의 말은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처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주차장에 갇힌 지 2시간이 넘었다. 주차장에 있던 차들은 어느새 대부분 나가 버리고 주차장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정산기계에 주차권을 다시 한 번 넣었더니 “3 유로를 더 넣으시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 반응이 없다가 반응이 생기니 돈을 더 내라는 말임에도 반가웠다. 급히 정산을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가 얼른 차단바 기계에 주차권을 넣었다. 하지만 역시나 다시 토해냈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멤버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출구 쪽으로 향하는 차가 눈에 띄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외쳤다. “Help Me!” 우리의 다급한 외침에 차에서 내린 프랑스 운전자는 우리 쪽으로 와서 몇 가지를 물으며 주차권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곧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차단바를 수동으로 열어줬다. 우리는 모두 안도했고 환호했다.

 

 

#3
고난
차가 언제
멈출지 몰라..

  하지만 환호도 잠시 불행의 여신(?)이 우리를 쉽게 놔줄리 없었다. 빌린 차량엔 기름이 없던 것이다. 런던을 가기 위해 깔레항으로 향하던 우리는 주유소를 찾아 무작정 도시를 헤멜 수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가는 곳에 주유소가 나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최대한 액셀을 밟지 않고 연비를 높이며 갔다. 드디어 마지막 고비가 왔다. 오르막길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엑셀을 밟았다. 차가 떨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며 힘겹게 오르막을 올랐다. 하지만 결국엔 내리막을 만났고 엑셀 없이 주유소로 들어왔다.

  그렇게 깔레항에 도착, 페리호를 타고 영국 런던에 있는 도버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 둔 한인분이 운영하시는 민박에 숙소를 잡았다. 드디어 휴식이다.

  마침내 3일 후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들어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처절했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의 아리랑을 알리는 멋진 비아트리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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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

 

'당신'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너의 몸 어딘가를 더듬는 것1)으로 아침을 시작해.
콧잔등 위로 명랑하게 떠다니는 노랫소리2)에 잠이 깨면
짜증날 때도 가끔 있지만.
지난 밤은 어땠는지,
괜찮았는지 네 온몸을 샅샅이 확인하고서야3)
샤워를 해.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는 동안,
너는 옆에서 쉼 없이 재잘대며
내 친구들이 흥미롭게 들을만한 이야기4)들을 늘어놔.
그 얘기를 주워섬기고 읊어댈 녀석들을 생각하니
왠지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너를 주시해.5)
내 옆에 잘 있는지, 손은 놓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예쁜지.

 

나의 집요함을 즐기듯 야살스런 눈웃음을 짓는 너.
맥이 빠진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아.
아파트 복도를 벗어나자 공기의 온도가 달라져.
팔뚝을 휘감는 축축한 열기 덩어리.
덥다, 그치? 미간을 좁히면서도
나는 여전히 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6)
생각해보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나는 늘 네게 사로잡혀 있었지.
맹세해.
널 처음 만났던 날부터 이 순간까지

 

나는 너에게 성실했어.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7)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어.
어떤 개그맨이 침통해 하면서 말했잖아.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승객이 아무도 없네요,
정말 걱정 되네요’ 하고.
그 때 나는 조금 비웃었어.
실은 그 개그맨이 더 걱정됐거든.
사람들은 책에 모든 해답이 다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답이 적힌 책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

 

책이란 건,
내가 내린 결론을 비웃으며 잘난 척하는
종이 나부랭이일 뿐이라고.
꿍하게 입술을 내민 내 귓가에,
네 무심한 콧노래가 들려와.8)
하아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너는 상관없다 이거지?
늘 이런 식이야.
내가 화를 내도, 웃어도, 미친놈처럼 발악을 하며
네게 소리를 질러도 너는 평정해.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느끼는 것들을

 

 

네게 이해시킬 수 없더라.
넌 기껏해야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하기만 할 뿐이지.9)
내 뜨거운 마음이
결코 너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서질 못해.
그 비참함을,
너는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저 교수님의 강의는 유난히 길게 느껴져.
에어컨도 신통치가 않아 등이 축축하네.
지루했는지 뾰로통해진 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는 책상 밑으로 몰래 몰래 너를 만져.
기다렸다는 듯 생긋 웃는 너.
그거 알아?
빛의 각도에 따라 네 눈동자의 색깔이 바뀐다는 거.
어떨 땐 호박색, 어떨 땐 사파이어 블루, 어떨 땐 하
늘색, 어떨 땐 풀잎색.10)
그 다채로움을 목격하고 있노라면,
어느 새 시간이 나를 훌쩍 뛰어 넘지.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행여
다른 놈들이 훔쳐보진 않을까 나는 전전긍긍해.
한두 번 이랬던 거 아니니까,
한숨 그만 쉬어.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나는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너랑 대화해.
녀석들은 어딘가 부러운 눈치야.
욕심도 많지.
지들도 다 옆에 끼고 있으면서 무얼.11)

 

밤이 깊어지고 얼큰하게 취한 나는 그만 너를 버려
두고 나와 버렸어.
제기랄.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12)
비틀거리며 너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그 동안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어.
사실 그건 나라고.
네가 없이 아무 것도 못하는 건 나라고 말야.
그렇게 되찾은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볼 뿐이야.
기다림으로 인한 권태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얼굴에 나는 조금 무너졌어.

 

이 지독한 사랑을 이젠 끝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를 악물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너를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로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너는 태연하다는 게

 

죽을 만큼 화가 나.
언제 어디에서건 너를 놓은 적이 없는 나잖아.
너도 그랬잖아.
나 사랑했잖아.
내가 담배를 피울 때도,
그 연기를 다 맡으며 옆에 있어줬잖아.
그랬던 여자는, 네가 유일했다는 거 알잖아.

 


이젠 그만 두자.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겠어.
너 없이도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게.
너도 느껴 봐.
내 손길이 사라진 후의 허전함을, 그 서늘함을,
견딜 수 없는 시간의 여백을.
그래. 우리 더 이상 섞이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멀어지자.
가주라.
제발 그렇게,
네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 손 안의 작은 세상-

스마트 폰, 네가.

 

01) 알람을 끄는 행위
02) 알람이 되겠지
03) 밤에 온 카톡은 없는지, ‘new’가 뜬 건 없는지
04) 팟캐스트
05) 집을 나설 때 핸드폰을 챙겼나 안 챙겼나 확인하는 행위
10) 색깔 순서대로 :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11)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친구놈들
12) 당연하지 기곈데
06) 길을 걸으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네 쯧쯧
07) 핸드폰 갖고 놀다가 핸드폰 들고 지하철 탐ㅇㅇ
08) 이어폰 꽂고 핸드폰으로 노래 듣는 중
09) 메모장에 내 감정을 기록하는 행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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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스토리

- 영남대학교 무전여행 동아리 ‘자유의지’ (프리윌)

 

 

취재와 글 : 고운 / 사진: 승지 / 편집 : 은민

 

 

* 인터뷰 응답자 소개

이지은 (‘자유의지’ 회장, 영남대학교 생명과학과 12학번)
이성실 (‘자유의지’ 28대 회원, 영남대학교 경영학부 12학번)
권한별 (‘자유의지’ 28대 회원,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부 12학번)
이재명 (‘자유의지’ 26대 회원, 영남대학교 첨단기계전공 10학번)
박무상 (‘자유의지’ 26대 회원, 영남대학교 첨단기계전공 10학번)

 

 

* 동아리 소개 부탁드려요.

무전여행을 하는 동아리예요. 정말 돈은 한 푼도 없이 여행한답니다.

 

 

* 동아리 이름이 ‘자유의지’인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여행코스부터 저희가 직접 짜거든요. 개인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거죠.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 그러면 여행을 정기적으로 계속 다니는 건가요?

네. 저희가 커리큘럼 같은 게 있어요. 1년을 시작하면서 그 커리큘럼에 맞춰서 여행계획을 일단 쭉 잡죠. 아무래도 여행 동아리다 보니 엠티도 많이 가고,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친해질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가까운 곳으로 일일여행도 다녀와요. ‘프리윌 리그’라고 저희끼리 해수욕장 가서 체육대회도 하고요. 농활도 가요. 농활을 가는 이유는 저희가 무전여행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그렇게 신세를 진 것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서예요. 무전여행은 1년에 한 번 여름방학 때 가요. 이 정도면 정기적으로 계속 다니는 편이죠.

 

 

 

* 여행을 가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할 텐데, 보통 어떤 준비를 하나요?

일단 여행지를 정하기 위해서 회의를 해요. 여행지부터 코스를 짜고 여행기간동안 함께 지낼 조를 짜는 것까지 회의를 통해서 직접 결정하죠. 여행코스를 짤 때는 한 도를 다 돌아보고 오는 식으로 짜요. 예를 들어,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출발지인 경산부터 포항, 영덕, 속초, 화진포, 통일전망대 이런 식으로 코스를 짜는 거예요. 또, 만약을 대비해서 여행자 보험을 들어놔요. 저희가 무전여행을 가면 보통 9박 10일로 가니까, 10일치 여행자 보험을 들면 되요. 1인당 3~4000원 정도 해요. 생각보다 싸죠? 저희는 무전여행이니까 여행자 보험이나 술값 정도만 내면 돈 들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 그냥 무전여행이라고만 하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식으로 여행을 다니는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다 같이 학교에 모여서 여행을 떠나요. 노천강당 앞에 저희 동아리가 심어놓은 나무가 있거든요.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그 나무 앞에 서서 무사히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이동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히치하이킹으로 하는데, 차가 잘 안 잡히면 꽤 걷기도 해요. 이동을 하다가 주변에 괜찮은 곳이 있으면 들렀다 가기도 하죠. 텐트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잠은 캠핑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데서 자요. 아침이랑 저녁은 가지고 온 식량으로 밥을 해 먹어요. 라면이나 고추장에 비빈 밥 이런 걸로요. 점심은 히치하이킹 하다보면 사주시는 분들이 가끔 계세요. 9박 10일 동안의 여행기간 중에 6일째는 ‘도보의 날’로 히치하이킹에 응해주신 분들과 여행을 다니며 신세진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걷는 날이에요. 한 30km정도 걸어요. 또, 마지막 10일 째는 텐트나 캠핑 장비를 여자들이 들어요. 9일 동안 남자들이 들었으니까 마지막 하루는 여자들이 들면서 힘든 걸 좀 알라는 거죠. (웃음) 이것 외에도 매일 저녁마다 ‘반성의 시간’이라고 다 모여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거나 마니또 게임 같은 것도 해요.

 

 

 

* 점심을 사주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셨잖아요. 그 중에 기억에 남거나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횡성 한우, 포항 물회, 막국수, 뷔페 등등 얻어먹은 음식이 참 많아요. 밤에 캠핑장에 자리를 잡으면 술을 사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이 진짜 맛있어요! 된장에 고추, 상추만 해서 먹는데도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스님이 차를 태워주셔서 절밥을 얻어먹은 적도 있어요. 절밥이 뷔페식이어서 신기했어요. 사실 중간에 배고파서 절에 찾아 들어간 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초코파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헌혈하러 갔는데,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잠도 못 자서 결국 헌혈은 못 했죠. 거기 계시던 간호사 분이 족발을 먹고 싶어 하는 저희의 눈빛을 알아채주셔서 헌혈은 안 하고 족발만 얻어먹었답니다. (웃음)

 

 

“히치하이킹을 하다보면 사회성이 늘어나는거 같아요”

 

 

 

*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하셨는데, 히치하이킹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나요?

그냥 보통 히치하이킹 하는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들고 길가에 서 있어요. 저희가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보통 세 명이 한 조예요.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 남자들만 있으면 잘 안 태워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남자들은 숨어 있다가 여자들이 히치하이킹 성공하면 나타나서 ‘감사합니다!’하고 타는 거예요.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계속 인사를 하면서 운전자 분들이랑 눈을 마주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목적지는 어디냐’ 이런 대화라도 한 번 할 수 있거든요. 트럭 같은 대형차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면 우르르 몰려와서 다 같이 타기도 해요. 트럭 뿐만 아니라 고속버스 히치하이킹도 성공한 적이 있어요. 경찰차도 타 봤고. 아, 비싼 차를 탄 날엔 막 서로 자랑도 하고 그래요.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는 거죠. (웃음+격한 공감)

 

 

 

* 히치하이킹에 응해주시는 운전자 분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인가요?

일단 여행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세요. 젊었을 때 무전여행을 해봤던 분들도 계시고. 작년에는 한 분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저희를 다 태워주시고 수박까지 사 주셨어요. 밤에 같이 노래 틀어놓고 놀다 가셨죠. (웃음) 한 번은 시골에 귀농하신 저희 동아리 선배님께서 차를 태워주신 적도 있어요. 굉장히 신기하고 반갑더라고요. 다니다보면 학교 선배님들도 많이 만나요. 그렇게 히치하이킹을 하다보면 사회성도 늘고, 어르신들이랑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 히치하이킹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저희가 트럭을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운전자 분께서 담배를 피시다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진 거예요. 저희는 트럭 뒤에 타고 있었는데 그 꽁초가 친구 다리 쪽으로 날아오더라고요. (헉, 다치진 않으셨어요?!) 다행히 옷에 구멍만 뚫리고 다치진 않았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홧김에 뛰어내릴 뻔했다더라고요. 그리고 차 트렁크에 탄 친구도 있었어요. 그게 큰 트렁크가 아니라 뚜껑 닫는 작은 트렁크였는데, 여자 두 명이서 거기에 들어간 거예요. 안 그래도 여름인데 정말 더워서 죽는 줄 알았대요.

 

 

 

* 여행을 다니면서 뿌듯하거나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밥 얻어먹을 때요. (웃음) 뭔가 멋있는 걸 하고 싶은데 진짜 밥 얻어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아무래도 계속 다녀야하니까 끼니를 때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 반대로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 때는?

비 올 때, 히치하이킹이 안 될 때, 운전자 분들이랑 할 말 떨어졌을 때, 한 번에 목적지로 못 가고 여러 번 히치하이킹 해야 할 때. 그 중에서도 씻는 게 제일 불편해요. (격한 공감) 특히 여자들이. 일단은 물을 구할 데도 잘 없어요. 따뜻한 물은 당연히 없고요. 작년에 여행 갔을 땐, 해수욕장도 개장을 안 해서 샤워실 같은 건 못 쓰고 그냥 공중 화장실을 썼었거든요. 호스를 이용해서 다 같이 씻어요. 씻고 있다가 사람 들어오려고 하면 한 명은 옷 입고 나가서 문 열어주고 나머지는 한 칸 안으로 전부 다 몰려 들어가는 거예요. 대피하는 것처럼. 판초를 입고 샤워한 적도 있어요. 혹시 보일까 봐 돗자리로 가리고. 남자들은 그냥 다 벗고 밖에서 샤워하기도 해요.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구경하시면서 ‘젊은 게 좋다’고 말씀하시죠. (웃음)

 

 

* 최근에는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셨나요?

그냥 여행은 엠티로 청도에 갔었어요. 무전여행처럼 길게 갔다 온 건 아니지만 저희는 엠티도 히치하이킹 해서 갔다 와요. 무전여행으로 갔던 건, 작년 여름 강원도요. 내륙 쪽으로 올라가서 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여행코스였어요.

 

 

*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디로 여행갈 계획인가요?

이번 방학 때는 전라도로 가요. 여행코스는 이미 다 짜놨어요. ‘함양 용추계곡 - 남원 교룡산성 - 모항 해수욕장 - 돌머리 해수욕장 - 송호 해수욕장 - 율포 해수욕장 - 장선 해수욕장 - 구송정 체육공원 - 유곡연민 체육공원 또는 의령 유곡천’ 이 코스랍니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여행하고 나면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마음이 훈훈해져요”

 

 

 

* 앞으로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제주도요! 제주도는 일단 관광도시니까 볼 것도 많고, 다 같이 다니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24대 때 제주도를 한 번 갔다 왔다는데 진짜 부러워요. 배도 타고 신날 것 같아요. 그런데 배는 히치하이킹하면 큰일나겠죠? (웃음)

 

 

*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요즘 뉴스를 봐도 흉흉한 소식 밖에 없잖아요. 다들 세상은 위험하다고만 하는데, 막상 나가보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생각해보면 남을 도와주고 좋은 일을 하는 건 뉴스에 안 나오니까 자꾸 나쁜 소식만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거의 민폐수준으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그만큼 또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 아닐까요? 여행하고 나면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마음이 훈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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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이번이 세번째다
                    - 지방음대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세 번째 유럽 도전기


송힘(비아트리오 매니저)


대한민국 위의 몇 개 대학을 빼고 나머지는 지방대학으로 퉁쳐 버리는 시대에 지방음대졸업한 여자들이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유학을 간다.

둘째는 학원을 차린다.

셋째는 시집을 간다.



 안타깝게도 배운 연주 실력으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지방음대생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딱 지정할 순 없이 대다수의 음대생들이 그럴 것이다.




처음엔 아마 연주가 좋아서 전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학부를 마치고 석사를 마치고 유학을 갔다 오고 그래도 연주를 해서 먹고 산다는 생각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비아의 세 명의 여자들은 뒤늦게 연주가 좋아 졌다. 학부 땐 몰랐는데 석사를 하면서 자신이 전공한 악기가 좋아지고 다른 악기랑 앙상블을 이루면서 연주하는 것이 좋아 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무대는 유명세와 비례한다. 비아 세 명의 여자들은 연주 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비아는 세계로 나가기로 생각했다.

 
먼저는 유럽이었다. 왜 유럽이냐면 유럽엔 세계적인 페스티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제일 많이 알려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은 대표적인
세계적 페스티벌이다. 기왕에 가는 것. 나름의 스펙도 챙기기로 했다. 유럽의 한국 대사관 영사관, 해외에 있는 한국언론사, 한인교회등 320곳에 메일을 보내서 혹시라도 비아를 원하거나 필요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단 한 곳에서도 답신은 없었다.



그래도 비아 40일의 일정으로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간다’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유럽투어를 시작했다.모든 처음이 그렇듯, 아프지 않고 물건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아비뇽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메일을 보내 비아의 유럽투어를 미리 홍보해주기 바랐지만 답신이 없었던  영국의 한인신문 두 곳에서 비아의 기사를 실어 주었다. 그것도 크게.

 

그리고 2011년 비아는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또 간다’라는 제목으로 60일간 두 번째
유럽 투어를 갔다. 2009년과 달라진 점은 이번엔 초대를 받았다. 라는 것이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2011년 헤드라이너로 U2, 콜드플레이, 비욘세가 장식한 세계최고의
뮤직 페스티벌이다. 그곳에 비아는 오디션을 합격해 정식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비아가 한국최초로 초대를 받았다. 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오디션은 한국에서도 많이 받았는데 초대를 받은 건 우리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아의 두 번의 유럽투어는 비아가 꿈꾸던 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60일간의 기간 동안 비아가 연주하는 모든 곳이 무대가 되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비아의 음악에 한국의 멜로디에 극찬을 해주었다.







2013년, 이제 비아는 세 번째 유럽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비아의 첫 번째 유럽투어를 위한 음반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되었다. 한국의 멜로디를
서양의 악기로 연주해서 외국인들이 좀 더 친근하게 한국의 멜로디를 알기 원했다. 그런 시도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외국 사람들은 금방 한국의 멜로디를 이해하고 즐겼고 한국의 악기를 원했다. 그래서 두 번째 유럽투어에는 첼로를 빼고 해금을 넣었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익숙한 서양악기와 한국의 해금이 어울려내는 소리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아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한국의 멜로디가 세계최고의 멜로디는 아닐지언정 최소한 한국의 멜로디는 이들에겐 다른 소리이고 흥미로운 멜로디라는 것이다. 충분했다. 그렇게 비아는 이후 계속적으로 음반에 한국적인 것을 담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비아는 이번 4집 음반을 한국의 한옥에서 녹음하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클래식 음반을 녹음을 할 때 교회나 성당의 울림이 좋은 곳에서 녹음을 한다. 비아도
이전의 앨범을 울림이 좋고 좋은 피아노가 있는 작은 홀에서 녹음을 했다. 그러다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을 위해 찾은 인수마을의 광거당에서 비아가 연주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두곡의 곡을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울림에 전율을 느꼈다. 단단한 한옥의 마루와
높은 황토벽에서 나오는 울림은 분명의 흙과 나무의 소리였다. 혹시 이것이 한국의 울림이 아닐까? 이것을 담아내면 그것이 한국의 소리가 아닐까?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광거당에서 녹음을 하기 위해 그곳의 어른들을 만났다. 그리고 허락을 받았다. 이제 문제는 소리를 어떻게 담아 내느냐였다. 녹음의 문제다. 그곳에서 연주를 해서 직접 귀로 듣는 것과 녹음을 해서 음반으로 듣는다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다. 비아는 선택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비아는 녹음을 하고 기계를 가지고 조금의 화장을 했다.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고 모난
소리를 깎기도 했다. 일종의 포토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왜냐면 만약 한옥에서 녹음을 하고 그 소리를 다시 기계로 조작을 하면 그 소리는 이미 한옥의
소리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화장한 얼굴들 속에 쌩얼인 나는 화장
안한 얼굴이니깐 화장한 예쁜 얼굴과 비교해서 안 예뻐도 예쁘다고 해줘야해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면 쌩얼이 예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연주와 그 연주를 그대로 담아내는 녹음기술이다. 비아는 쌩얼로도 예쁘길 원한다.
그래서 지금 노력중이다.






평균나이 30대 인데 비아는 여전히 고생을 사서하고 있다. 여전히 도전 중이란 말이다.
이제 한 달 뒤에 비아는 세 번째 유럽투어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두렵지 않냐고? 힘들지 않냐고?
두렵다. 그리고 힘들다. 하지만 훨씬 재밌다.
처음 유럽투어를 할 때 거의 모든 공연이 거리 공연이었다. 공연을 시작할 때 늘 생각했다.
우리가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봐줄까?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이해할까?
사람들이 돈을 줄까?


사람들이 음반을 살까? 물론이다. 심지어 공연에 감동해 우는 사람도 있다. 비아가 바라던 무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방음대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유럽 도전이 다시 시작된다. 그런 비아의 세 번째 유럽 투어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여러분과 이 지면을 통해 비아의 세 번째 유럽 투어를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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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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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대공원역에는 대공원이 있을까?

첫번째 나댐 _지하철역 편

 

글  혜은
편집  새봄

 

 

 

 

  포항이 고향인 필자는 정확히 3년 전인 스무 살, 개강 전날에 난생 처음으로 지하철이란 걸 타보았습니다. 그날 덜컹덜컹 시끄러운 버스가 아닌 한 마리 뱀처럼 미끈하게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이라는 생소한 플레이스에 당도한 저는, 드디어 대도시에 왔다는 흥분에 휩싸였더랬지요. 그렇게 저의 대구 라이프는 지하철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호선, 2호선 승객의 연령 차이를 알게 되고, 어떤 역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마저 기억하게 되었을 무렵, 저는 출입문 위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뜯어보며 비로소 그 이름의 뜻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공원, 반고개, 큰고개, 아양교, 해안.......
  대공원. 어! 대구에 대공원이 있었나? 제 궁금증은 그렇게 출발하였습니다. 과연...대공원역엔 대공원이 있을까요?

 

  저는 일단 무작정 대공원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장바구니를 들고 승차하시는 서문시장역과, 한껏 꾸민 젊은이들이 우루루 하차하는 반월당역을 지나고 평소엔 전혀 들을 일 없는 ‘만촌’이나 ‘담티’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대공원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어떤 단발머리 아가씨 한명과 함께 하차했습니다. 알고 보니 대공원역은 개통 이후 매년 승차인원 최하위권의 유통인구를 자랑하는 역이었습니다.

 

 

 

  역사는 굉장히 넓고 휑했습니다. 저는 대공원이라는 글씨를 찾아볼 수 없는 4번과 5번 출구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5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오른쪽에 황량하게 깎인 산과 그 옆에 쉬고 있는 포크레인이 보입니다. 앞쪽에는 대구 미술관 순환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대공원의 단서가 보이지 않아 일단 ‘대구 스타디움’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고 가로수 길을 따라 걷어보기로 합니다. 팔차선 도로 위로 알록달록한 설치물이 보입니다. 더 가면 뭔가 나올 것도 같습니다. 교차로 화단에 우뚝 선 바위가 몸에 ‘월드컵로’라는 글씨가 기대를 더 하고, 붉은 벽돌 사이에 동그란 대리석을 품은 인도는 미적인 손길이 느껴지며 뭔가 나타날 듯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풍깁니다.

 

  그렇게 대공원을 찾는 밀당에 지쳐갈 무렵, 저 멀리 하얀 지붕이 보입니다. 오가는 차들도 많아졌습니다. 드디어 대공원에 도착한 것일까요?

 

  하얀 지붕 앞에서 저는 ‘대구 스타디움’을 아주 잘 찾아왔다는 것과 동시에 대공원역에는 보통사람이 알고 있는 대공원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겨드랑이는 땀으로 젖어있었고 발바닥의 피로감에 붙어버렸지만요.

 

  대공원역에는 대공원이 있다? 없다? ㅁㅁㅁㅁ 없다!!!

  [ 대공원역의 규모는 2호선 29개 역사 중 세 번째로 크며, 건설비도 다른 역사에 비해 수십 억 원이나 더 들어간 곳입니다. 당시 대구대공원과 대구스타디움이 개장하면 지역민과 외지인의 승객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대구시는 506만평 규모의 대구대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지만 조성 사업은 장기간 표류하고 있고, 애당초 대공원 내 구름골에 달성공원 동물원을 이전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이전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현재 대구대공원 터에는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공원역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공원 없는 대공원역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면서요. ]

 

  학교에 갈 때 강창역에서 내릴 것인지 계명대역에서 내릴 것인지에 대한 저의 딜레마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만, 드디어 대공원역의 대공원 존재여부에 대해 밝혀내고야 말았습니다.
자, 그럼 다음 역
으로 출발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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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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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마음 속 '네모'

Photo by. 이승지

 

 

 

반듯반듯한 것들을 보면
걸음을 멈추게 된다.

 

 

 

나란히 줄 지은 것들을 보면
넋을 놓게 된다.

 

 

 

마음속에 파도가 치면 좋겠다.
전부 씻겨 나가도록.

 

 

 

내 마음도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속엔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복잡한 날엔 그냥 바라만 본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도 반듯해질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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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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