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사설

부려먹기 좋은 대학생



글|문제원 · 일러스트|근아·





억압적 노동으로 미래사회의 붕괴를 예측한‘ 유나바머’


1995년 9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한 장의 편지를 받는다. 발신인은 당시 수차례 폭탄 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유나바머’. 그는 자신이 보낸 성명서를 신문에 게재해 줄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폭탄테러를 지속하겠다고 협박한다. 오랜 추적에도‘ 유나바머’를 잡을 수 없었던 FBI는 신문사에 그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조언하고 결국 이 성명서는 3개월에 걸쳐 신문에 게재되기에 이른다.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현대 산업사회와 첨단 기술문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테러범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명문(明文)이었다.


이 장문의 성명서에는 조직 사회가 유기체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에게 억압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져 있다. 즉 과도한 노동으로 대변되는 '육체적인 억압'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인간의 행동을 개조한다는 '심리적인 억압'이 맞물려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현상이 한계를 넘어 조만간 사회가 범죄, 부패, 노동 회피,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 사망률의 증가 등으로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정당한 노동과 임금이 교환되는‘임 노동에’ 기반


산업문명 자체를 거부하는 유나바머 성명서의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순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만연한 노동의 착취가 사회 구조를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선 공감 할 부분이 있다. 그럼 그가 말한 노동은 어떤 것 이 길래 이로 인한 문제가 본질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사회를 붕괴로 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임노동(賃勞動)에 기반을 둔 구조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노동자)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다. 때문에 억압으로 인한 노동력 교환 과정의 불공정함은 언젠간 곪아 터질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말한 사회 붕괴의 본질이다.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현대 노동자는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자신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이며 노동 거래 과정에선 적당한 임금과 노동력이 상호 교환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값싼 양질의 노동력, 부려먹기 좋은 대학생


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노동자가 과연 자유로운 주체적 존재인지, 하물며 모든 노동의 행위가 정상적인 임금을 위해 행해지는 일반 근로자에 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의 주체와 노동착취는 이미 대학생들에게도 만연한 일이 돼버렸다. 지난 7월 서울시는 유아교육학이나 아동복지학 등 관련 학과 학생들이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을 하루 2~6시간씩 돌봐주는‘ 대학생 돌보미 사업’을 시작했다. 관련 전공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실무 경험이 될 것이라는 명분 아래 시급은 5500원이었다. 이 대학생들에게 아이 돌봄 외에 가사노동까지 전가 했다는 논란은 무시하더라도 시에서 주관하고 노동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임을 고려했을 때 분명 낮은 시급이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교육 혜택을 준다는 명분에 시급이 아예 없거나 과도하게 낮은 수준에서 행해지‘는 대학생 교육봉사’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런 대학생 교사와 멘토제는 수도 없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임금 없는 무대가(無代價) 노동이다. 이 외에도 조금 큰 행사를 개최한다고 하면 자원봉사자 모집은 거의 일반적으로 행해진다. 대상은 물론 대학생이나 청소년들이며, 그 대가는 주로 봉사시간이다. 조금 나은 곳은 교통비와 간식거리가 추가된다.





임금 없는 노동의 대가는 취업?


이처럼 대학생들이 '부려먹기 좋은' 대상이 된 데는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 속에 희생과 열정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를 둘러싸, 봉사와 스토리, 개성이라 일컫는 기업과, 이에 매료되고 지배당한 일부 사람들의 탓이 크다. 대학생들의 노동이라고 노동의 가치가 적다고 생각하거나 적당한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봉사기간과 수료증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 노동의 대가가 될 순 없다. 요즘엔 대구에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단체와 활동들이 생기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가서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대민 지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알바의 개념이 아닌 스펙을 위한 봉사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이는 스펙이 필요한 학생들은 부려먹어도 좋다는 구조적 생각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봉사는 좋지만 스펙을 위한 봉사는 싫어요


물론 이런 대가없는 봉사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교육봉사의 경우 지식의 재분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목적이 있으며 이는 양로원이나 보육원 등에서 모집하는 자원봉사도 마찬가지다. 또한 행사에 있어서 자원봉사는 활력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예산에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가 없이 희생을 베푸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역사적으로 기득권 계층, 자본주의 구조에선 부와 명예를 갖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등록금에다 학원비, 각종 취업준비비용까지 경제적, 육체적으로 지쳐가는 대부분 대학생들은 시간과 정신을 소비해 아가페 적인 봉사를 베풀만한 여유가 없다. 설사 있다하더라도 그 목적이 오로지 순수 한 것일 때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의 목적이 봉사시간과 스펙이 아닐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얼마 전 국내 일러스트의 대표업체라고 불리던 ‘팝픽’이 최저임금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343원을 시급으로 지급하다가 노동착취 혐의로 고소당한 사건이 있었다. 열정이 있고 경험을 쌓고 싶다면 그냥 일하라는 이런 열정페이의 논리가 현재 대학생들이 처한 상황과도 꼭 닮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팝픽’은 대놓고 이윤추구를 한 반면, 위의 단체들은 그 가치를 공공선으로 맞춰놓았다는 것 정도(물론 아닌 곳도 다수 존재한다)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대학생들의 노동착취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자신의 의도를 위해 젊은 열정을 격하(格下)시켜 사용하는 일부 사람들의 비겁하고 이기적인 생각의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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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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