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 이번이 세번째다.

                - 지방 음대 졸업생들의 계란으로 바위 깨는 세 번째 유럽 도전기.
                   두번째 이야기 +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글. 송힘(비아트리오 매니저)

 

 

#0.
세 번의 준비,
조금은 노련해진
우리들

  유럽투어 이틀 전, 드디어 4집 음반을 대구에서 택배로 받았다. 이전엔 항상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음반을 받았는데 이번엔 이틀 전에 받았으니 소중한 하루를 번 셈이다. 이렇게 번 하루를 이용해 음반을 선(先)주문 한 분들에게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 함께 발송했다.

  분주하지만 이전보단 확실히 노련해진 솜씨로 짐을 쌌다. 우리가 노련해졌다는 것은 짐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처음 유럽 갈 준비를 할 땐 필요한 물품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하도 많이 사서 택배가 매일 사무실에 왔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해간 것들 중 투어 내내 한번을 사용 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이젠 세 번째 아닌가. 잘 안 산다. 빌리거나 없이 지낸다. 2013년 6월 21일, 이렇게 아리랑 공연을 위한 우리의 세 번째 유럽투어의 날이 다가왔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지만 3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차질 없이 출국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먼저, 들고 온 짐들을 화물칸에 실기 위해 사람들 뒤로 줄을 섰다. 다행이 두 번째 유럽 투어 때, 키보드를 영국에 두고 와서 짐의 무게 제한을 초과할 위험을 줄였다. 그래도 40일간의 연주여행인 만큼 개인 악기와, 판매할 음반, 각종 짐들을 다하면 수하물 무게 제한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걱정했다. 저번 여행 땐 짐이 너무 많아서 결국 집으로 보냈다가 다시 비싼 돈을 들여 다른 비행기(항공 우편)를 통해 받은 적이 있었다. 가야금 때문에 조금의 문제는 있었지만 돌려보내는 물건 없이 모든 물건을 비행기에 실을 수 있었다. 무사히 짐을 싣고 파리 드골 공항으로 출발했다.

  12시간 후. 파리 시간으로 오후 6시, 우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입국심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는 해외여행을 해봤다면 한번쯤 거쳤을 꽤나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다. 괜한 영어 울렁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리 드골 공항의 입국심사는 지금껏 어떤 나라의 공항과 비교해도 간단했다. 여권 사진과 얼굴을 한 번 씩 번갈아 본 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고는 그냥 통과였다. 그 흔한 “왜 왔냐?”라는 질문조차 없었다.

 

 

#1
고난
리스(lease;장기대여)한
차는 어디에?

  하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총 5명의 멤버 중 3명은 아시아나, 2명은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시아나 비행기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먼저 온 세 명이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차를 찾아오기로 했다. 그 세 명 중에서도 한 명은 짐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차를 찾으러 갔다. 우리가 있던 곳은 터미널 1이었는데 차는 터미널 3으로 가야 찾을 수 있었다. 드골공항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드골공항은 파리 대표 국제공항으로 비행기 횟수기준 유럽에서 제일 바쁜 공항이다) 터미널 3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공항전철을 타고 어느 정도 나간 뒤 2km 정도를 더 걸어가야만 터미널3이 나온 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혼자 짐을 지키고 있는 멤버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예상 했던 시간과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을 타고 늦게 출발한 2명의 멤버가 도착하기 전에 차를 찾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한 시라도 빨리 차를 찾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무작정 터미널 3으로 출발했다. 터미널 3에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차 대리점이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직원은 프랑스식 영어로 열심히 가르쳐 줬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들은 단어-문장이 아닌 단어는-사실 몇 단어 되지 않았다.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린 다 알아 들은 척 “메르씨(merci)”와 “땡큐”를 번갈아 외치며 다시 주차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알아들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해 차를 찾든 대리점 찾든 결판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넓디 넓은 주차장에서 공항 직원에게 얻은 알아듣지도 못한 힌트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다시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묻기로 했다. 직원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데 웬 잘생긴 프랑스 청년이 나를 빤히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차를 빌린 대리점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프랑스인이 이렇게 반갑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럭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차를 찾았으니 멤버들을 찾으러 가야했다.

 

 

 

 

#2
고난
2시간 동안
주차장에 갇히다

  차를 찾고 얼마 되지 않아, 늦게 출발한 2명의 멤버가 터미널 3으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터미널 3에 있던 우리는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한국은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프랑스는 쌀쌀한 날씨였다.) 멤버들을 태우고 터미널 1에 남아 짐을 지키는 마지막 멤버를 찾으러 갔다.

  문제는 주차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생겼다. 공항 안쪽에 있는 무인 기계에서 주차비용을 다 지불하고 난 뒤 출구에 있는 기계에 넣었는데 자꾸 토해내는 것이었다.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주차권을 넣었는데 정산기계마저도 티켓을 토해냈다. 스피커폰에 대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스피커 속 직원의 말은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처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주차장에 갇힌 지 2시간이 넘었다. 주차장에 있던 차들은 어느새 대부분 나가 버리고 주차장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정산기계에 주차권을 다시 한 번 넣었더니 “3 유로를 더 넣으시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 반응이 없다가 반응이 생기니 돈을 더 내라는 말임에도 반가웠다. 급히 정산을 끝내고 다시 차로 돌아가 얼른 차단바 기계에 주차권을 넣었다. 하지만 역시나 다시 토해냈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멤버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출구 쪽으로 향하는 차가 눈에 띄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외쳤다. “Help Me!” 우리의 다급한 외침에 차에서 내린 프랑스 운전자는 우리 쪽으로 와서 몇 가지를 물으며 주차권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곧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차단바를 수동으로 열어줬다. 우리는 모두 안도했고 환호했다.

 

 

#3
고난
차가 언제
멈출지 몰라..

  하지만 환호도 잠시 불행의 여신(?)이 우리를 쉽게 놔줄리 없었다. 빌린 차량엔 기름이 없던 것이다. 런던을 가기 위해 깔레항으로 향하던 우리는 주유소를 찾아 무작정 도시를 헤멜 수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가는 곳에 주유소가 나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최대한 액셀을 밟지 않고 연비를 높이며 갔다. 드디어 마지막 고비가 왔다. 오르막길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엑셀을 밟았다. 차가 떨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며 힘겹게 오르막을 올랐다. 하지만 결국엔 내리막을 만났고 엑셀 없이 주유소로 들어왔다.

  그렇게 깔레항에 도착, 페리호를 타고 영국 런던에 있는 도버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 둔 한인분이 운영하시는 민박에 숙소를 잡았다. 드디어 휴식이다.

  마침내 3일 후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들어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처절했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의 아리랑을 알리는 멋진 비아트리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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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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