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당신'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너의 몸 어딘가를 더듬는 것1)으로 아침을 시작해.
콧잔등 위로 명랑하게 떠다니는 노랫소리2)에 잠이 깨면
짜증날 때도 가끔 있지만.
지난 밤은 어땠는지,
괜찮았는지 네 온몸을 샅샅이 확인하고서야3)
샤워를 해.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는 동안,
너는 옆에서 쉼 없이 재잘대며
내 친구들이 흥미롭게 들을만한 이야기4)들을 늘어놔.
그 얘기를 주워섬기고 읊어댈 녀석들을 생각하니
왠지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너를 주시해.5)
내 옆에 잘 있는지, 손은 놓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예쁜지.

 

나의 집요함을 즐기듯 야살스런 눈웃음을 짓는 너.
맥이 빠진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아.
아파트 복도를 벗어나자 공기의 온도가 달라져.
팔뚝을 휘감는 축축한 열기 덩어리.
덥다, 그치? 미간을 좁히면서도
나는 여전히 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6)
생각해보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나는 늘 네게 사로잡혀 있었지.
맹세해.
널 처음 만났던 날부터 이 순간까지

 

나는 너에게 성실했어.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7)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어.
어떤 개그맨이 침통해 하면서 말했잖아.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승객이 아무도 없네요,
정말 걱정 되네요’ 하고.
그 때 나는 조금 비웃었어.
실은 그 개그맨이 더 걱정됐거든.
사람들은 책에 모든 해답이 다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답이 적힌 책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

 

책이란 건,
내가 내린 결론을 비웃으며 잘난 척하는
종이 나부랭이일 뿐이라고.
꿍하게 입술을 내민 내 귓가에,
네 무심한 콧노래가 들려와.8)
하아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너는 상관없다 이거지?
늘 이런 식이야.
내가 화를 내도, 웃어도, 미친놈처럼 발악을 하며
네게 소리를 질러도 너는 평정해.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느끼는 것들을

 

 

네게 이해시킬 수 없더라.
넌 기껏해야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하기만 할 뿐이지.9)
내 뜨거운 마음이
결코 너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서질 못해.
그 비참함을,
너는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저 교수님의 강의는 유난히 길게 느껴져.
에어컨도 신통치가 않아 등이 축축하네.
지루했는지 뾰로통해진 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는 책상 밑으로 몰래 몰래 너를 만져.
기다렸다는 듯 생긋 웃는 너.
그거 알아?
빛의 각도에 따라 네 눈동자의 색깔이 바뀐다는 거.
어떨 땐 호박색, 어떨 땐 사파이어 블루, 어떨 땐 하
늘색, 어떨 땐 풀잎색.10)
그 다채로움을 목격하고 있노라면,
어느 새 시간이 나를 훌쩍 뛰어 넘지.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행여
다른 놈들이 훔쳐보진 않을까 나는 전전긍긍해.
한두 번 이랬던 거 아니니까,
한숨 그만 쉬어.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나는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너랑 대화해.
녀석들은 어딘가 부러운 눈치야.
욕심도 많지.
지들도 다 옆에 끼고 있으면서 무얼.11)

 

밤이 깊어지고 얼큰하게 취한 나는 그만 너를 버려
두고 나와 버렸어.
제기랄.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12)
비틀거리며 너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그 동안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어.
사실 그건 나라고.
네가 없이 아무 것도 못하는 건 나라고 말야.
그렇게 되찾은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볼 뿐이야.
기다림으로 인한 권태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얼굴에 나는 조금 무너졌어.

 

이 지독한 사랑을 이젠 끝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를 악물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너를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로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너는 태연하다는 게

 

죽을 만큼 화가 나.
언제 어디에서건 너를 놓은 적이 없는 나잖아.
너도 그랬잖아.
나 사랑했잖아.
내가 담배를 피울 때도,
그 연기를 다 맡으며 옆에 있어줬잖아.
그랬던 여자는, 네가 유일했다는 거 알잖아.

 


이젠 그만 두자.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겠어.
너 없이도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게.
너도 느껴 봐.
내 손길이 사라진 후의 허전함을, 그 서늘함을,
견딜 수 없는 시간의 여백을.
그래. 우리 더 이상 섞이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멀어지자.
가주라.
제발 그렇게,
네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 손 안의 작은 세상-

스마트 폰, 네가.

 

01) 알람을 끄는 행위
02) 알람이 되겠지
03) 밤에 온 카톡은 없는지, ‘new’가 뜬 건 없는지
04) 팟캐스트
05) 집을 나설 때 핸드폰을 챙겼나 안 챙겼나 확인하는 행위
10) 색깔 순서대로 :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11)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친구놈들
12) 당연하지 기곈데
06) 길을 걸으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네 쯧쯧
07) 핸드폰 갖고 놀다가 핸드폰 들고 지하철 탐ㅇㅇ
08) 이어폰 꽂고 핸드폰으로 노래 듣는 중
09) 메모장에 내 감정을 기록하는 행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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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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