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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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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THE BIG ISSUE란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된 홈리스 자활 잡지로, 홈리스들이 잡지를 판매하면 수익의 53%을 가짐으로써 조금씩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다른 직장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시작 되어 현재 서울과 대전에서 허가받은 지하철역 앞에서만 판매 활동 중이며, 50 여명에 이르는 빅이슈 판매원 중 10여명이 임대주택에 들어갔습니다. 잡지의 모든 내용은 유명인이나 기자들의 재능 기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빅이슈에서 말하는 ‘홈리스’란 일정한 거처 없이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분들로 주거 취약 계층입니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는 전체 노숙인들의 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쳤어? 이런 델 혼자 오면 어떡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빅'에서 강경준(공유)이 길다란(이민정)에게 뛰어와서 버럭 화를 냈다. 길다란이 혼자 겁을 먹은 채 노숙자가 많은 지하도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드라마 '빅'의 저 장면을 봤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와! 드디어 공유가 왔구나! 구해주러 왔구나! 멋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노숙자에 대한 인식은 딱 거기까지다. 일 안하고 게으르고 나에게 언제 해를 끼칠지 모르는. 사실 노숙자에 대해 더 생각할 어떠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노숙자에 대해 한 번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빅이슈 코리아’-홈리스가 직접 잡지를 판매함으로써 자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 수업 시간에 우연히 알게 된 ‘빅이슈’라는 사회적 기업과 인연이 닿아 방학 동안 2주간 빅이슈 서포터즈(이하 빅터즈)로 활동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간다고 하니 학교 봉사 시간 때문이니, 니 이력서에 도움이 돼서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단순히 빅이슈 코리아의 의도가 좋아보였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싶었고 보는 순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서포터즈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모두 6명. 21살인 내가 제일 막내였다. 취업 준비생이거나 대학교 4학년인 언니, 오빠들이었다. 게다가 나를 빼고는 다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 사람에 대한 막연한 편견 때문이었는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오긴 했는데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었다. 하지만 언니, 오빠들은... 내가 2차원적인 세계에 사는 나만 바라보는 아이였다면 3차원 세계에서 더 넓게 생각하고 있어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회의 시간에 피드백을 할 때면 언니, 오빠들은 선생님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서도 항상 빅이슈의 기업적인 면에서 빅이슈 잡지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빅터즈가 이제 시작하는 1기인만큼 빅터즈 활동에 있어서의 부족한 점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도 내놓았다. 잡지 자체의 내용도 좋은데, 사람들이 연민으로만 이 잡지를 사서는 장기적으로 가기 힘들다는 말도 해 주었다.


피드백 시간 외의 서포터즈 활동은 사무실 일을 돕기도 했지만 매일 거의 3시간씩 판매 현장에 직접 찾아가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과함께 잡지를 판매하는 빅돔(빅이슈 판매 도우미) 활동을 했다. 현장에 나가면 몇 시간을 계속 서서 판매한다. 보통 2명씩 나눠져 빅판 선생님들이 계시는 지하철역으로 갔다.(빅이슈에서는 판매원들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신간 잡지를 들고 “안녕하세요, 빅이슈 코리아 입니다! 3000원으로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착한 잡지입니다!” 와 같은멘트를 외치며 판매를 한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어색함 때문에말문이 막혀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더 많은 사람이 쳐다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 크게 외치다 역사직원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제지를 받기도 했다. 같이 성신여대 역에 갔던 언니는 “얼마나 재밌으면 이렇게 나와서 잡지를 팔고 있을까요? 예쁜 언니들의 필수 아이템 빅이슈 코리아 입니다!”라며 센스 넘치게 말해 그 날은 정말 잡지가 잘 팔렸었다. 하지만 우리가 빅돔을 나가는 시간이 3시에서 6시 사이로 사람들이 비교적 적고 판매가 잘 안 되는 시간대여서 많이 팔 때는 10권도 넘게 팔지만 적게 팔 땐 3권을 파는 것도 힘든 날이 많았다.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하루 종일 그렇게 책이 안 팔리는 날도 꽤 있었다. 우리야 잠깐 가서 몇 시간 같이 팔다 돌아오지만 선생님들 대부분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저녁까지 계신다. 이렇게 잡지 판매가 잘 안 되는 날이면 힘이 빠지고 쉽게 지쳤다. 이럴 때면 선생님들은 음료수를 사 오시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우리들과의 시간을 가지시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혼자 계실 때는 문제가 있었다. 단순히 판매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거나 흘깃 보면서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서있어야 하는 선생님들은 다시 한 번 사람들로부터 거절감을 느끼고 쉽게 상처를 받으셨다. 그리고 어떨 땐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라고 외치면 “홈리스는 뭐야. 그냥 노숙자라고 하지.”라며 지나가는 분들도 있고, “차라리 구걸을 하라”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님들도 욱! 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구매해주는 독자들, 가끔씩 음료수 하나씩 건네주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더 많이, 크게 기억하고 계셨다.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우리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는 선생님도 계시고, 우리가 가면 판매보다 우리와 이야기하시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도 계신다. 우리가 판매가 잘 안된다고 걱정하면 오히려 선생님께서 마음을 비워야 이 일을 오래할 수 있다며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다. 빅판 선생님들은 빅이슈를 통해 이렇게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일어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돈을 벌며 저축해서 임대 주택에 들어가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한다. 그들이 자립하지 못하고 ‘홈리스’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실패자’로 보고 우리 사회도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배제하여 소극적인 제도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홈리스들을 ‘구빈’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공생’의 존재로 여기고 좀 더 따뜻 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그 시선 하나로도 조금씩의 변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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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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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el 2015.06.07 11: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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